지난주 브라질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 당선자가 백악관을 방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났다. 룰라 당선자는 집권후 시장 경제와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설명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부시 대통령은 "당신이야말로 공화당원"이라고 농을 던졌다.회담은 예정시간을 초과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백악관측은 "매우 건설적이고, 긍정적 회담이었다"고 논평했다.
지난 10월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당 후보 룰라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자, 미국은 안방인 남미에 최대의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것을 걱정했다. 당시 폴 오닐 재무장관은 "그가 미친 사람이 아닐 것"이라며 반어법을 동원해 우려를 표명했고, 미국 언론들은 남미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기사를 쏟아냈었다.
그러나 금속노동자 출신의 룰라 당선자는 영리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선거에 임박해 시장 경제를 유지하고, 해외부채를 갚겠다고 한발 물러섰고, 당선자의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 부시 행정부의 우려를 씻어냈다.
그는 오히려 미국이 농업에 보조금을 주고 무역장벽을 쌓는 것이 자유무역에 위배된다고 훈수까지 하고 돌아갔다.
룰라는 중앙은행 총재, 재무ㆍ산업ㆍ농업부 장관 등 차기 경제팀의 핵심을 모두 기업인 또는 금융인 출신으로 임명, 중도 내각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룰라와 함께 미국에 온 안토니오 팔로치 재무장관 내정자는 뉴욕 월가를 방문해 "룰라는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이로써 미국은 브라질을 제2의 쿠바로 보지 않게 됐고, 브라질도 미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미국과 브라질의 화해는 몇가지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선거에 앞서 자국의 이해에 유리한 후보가 당선되기를 희망하지만, 국민투표에서 당선자가 결정됐을 때는 우호관계를 원한다는 점이다.
해외 자본의 입장에서도 조지 소로스를 비롯, 투자가들이 노골적으로 룰라의 당선을 원하지 않았지만 부채 상환과 시장 개방을 약속하는한 좌파 정부의 중도화를 받아 들인 것이다. 브라질로선 미국이 주도하는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글로벌 경제를 피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미국에 협력을 약속했다.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서 대외 정책을 놓고 불안이냐, 안정이냐의 논쟁이 일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 선택의 토대 위에서 미국과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뉴욕=김인영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