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느려서 더 행복한 여름휴가


'휴가는 다녀오셨는지요?' 요즘 누구를 만나더라도 건네는 인사말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하루하루, 누구에게나 삶은 힘겹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더 고달프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니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래서 직장인들에게 주어진 여름휴가는 1년을 버티어온 힘이자 내일을 위한 희망이다. 올 여름 어떤 이는 산과 계곡ㆍ바닷가를 찾아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할 것이며 어떤 이는 해외여행을 다녀올 것이다. 여행 한 번 가기 힘들던 시절에는 여름휴가가 1년 여행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고 일주일에 이틀을 쉬는 시대, 섬에서 산골 마을까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든 다녀올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자신만의 테마 휴가 만들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휴가가 1년 여행의 전부였던 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남들 쉴 때 나도 쉬어야 하는 휴가 문화는 전 국민이 동시에 휴가를 떠나게 만든다. 좁은 땅덩어리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쳐나고 사람들은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여행은 고생길에서 시작한다지만 휴가 가는 길은 차로 넘치고 진이 빠져 목적지에 도착하면 익숙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횟집뿐인 해수욕장 거리, 쓰레기로 넘치는 계곡, 길 따라 곳곳에 자리잡은 노점상…. 그래서 찾아온 사람들 역시 똑같은 모습과 분위기만 느끼고 떠난다. 여기저기 다니느라 뭐하나 제대로 보고 느끼지 못하고 휴가는 고생이 되고 만다. 이제는 우리 휴가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치열한 경쟁과 각박한 도시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여 좀 더 천천히, 느리게 쉬는 여행, 나만의 여행 테마를 찾아 특별한 휴가를 보내는 건 어떨까. 자연의 시간과 흐름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여유 있게 쉬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열정과 꿈을 채워오는 것이 진정한 휴가다. 이름난 관광지와 한여름만 고집하지 말자. 오히려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불편한 곳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계절에 떠나시라. 느리게 사는 삶, 슬로 라이프(slow life)의 지혜는 작은 것, 야단스럽지 않은 것, 잃어버린 것, 천천히 유지되며 순환하는 것의 의미를 일상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가슴에 담는 것으로도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도시인들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은 결코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있지 않다. 더 갖고 덜 가지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속도의 문제이다.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는 걷기여행도 따지고 보면 지친 도시민들이 속도를 늦춰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고자 함이다. 마음을 비우는 여행도 해볼만 아직 떠나지 않았다면 그렇고 그런 곳, 인파와 쓰레기로 넘쳐나는 여행지 대신 한적한 여행지에서 숨은 이야기를 만나고 오시라. 긴 장마 끝에 더욱 짙푸른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해남 땅끝의 시골 5일장 남창장에서 갯내음 가득한 산물을 만나보시라. 문경의 막사발 공방에서 늙은 도공의 열정을 만나고, 하동 야생 차밭에서 맑은 녹차 한 잔, 한적한 남도의 낭만적인 섬 여행,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슬로시티 증도도 좋다. 여행자 자신이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이런 곳일수록 나를 찾아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가 될 것이다. 또 최고의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시라. 더위를 식히는 여름휴가를 넘어 마음을 맑게 비우는 여행, 꿈을 채워오는 여행을 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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