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인터넷 강국 ‘우물안 개구리’

최근 국내 대학에 몸담기 위해 한국에 온 재미교포 김모씨는 인터넷 서비스를 접해보고 두번 놀랐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빠른 속도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각종 서비스에 가입하자면 주민등록번호를 반드시 적어야 한다는 강제사항에 또 한번 놀랐다. 미국에서는 생년월일과 주소만 있으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온라인 결제도 신용카드 번호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학의 디지털도서관 접근조차 차단되는 바람에 여권 등 잡다한 증빙서류를 직접 제출하는 큰 불편을 겪었다. 회원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김씨는 결국 인터넷 이용을 포기하고 말았다. 세계 최강의 인터넷을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정작 외국인들은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단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외국인 등록번호 인식프로그램을 배포하고 있다지만 홍보부족과 이용불편으로 보급률이 저조해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법무부가 이달 중 도입하기로 했던 실시간 외국인 실명확인 서비스도 이런저런 이유로 시스템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분야는 전자상거래다. 주민등록번호에 의존한 지불결제 시스템은 인터넷 서비스의 한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의 B2C(기업 대 개인) 시장 규모는 6조5,000억원. 미국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 한 회사의 매출(6조3,000억원)에 불과한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 천국을 만들겠다고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손님을 앞장서 쫓아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강국임을 자랑하고 있지만 시스템 체계에 대한 글로벌 비전 부족과 주민등록번호를 바탕으로 한 실명제라는 올가미에 걸려 내수시장에만 목을 메는 반쪽짜리 서비스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있다. 인터넷은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급변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사이버 공간에서는 오히려 주민등록번호에 얽매여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국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장선화 기자 (정보과학부) indi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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