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2월 10일] 경제학, 왜 위기에 취약한가

윤우진<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인류의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는 경제학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불황을 먹고 성숙해가는 학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경제사상이나 이론은 잘못된 진단과 처방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 발전해왔다. 현대 경제학은 지난 1930년대의 대공황을 계기로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위기대응 과정에서 ‘사후약방문’적인 역할에 그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과거 자료로 미래 예측 한계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하건 간에 경제위기를 사전에 막지 못하는 한 경제학에 대한 일반대중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게 된다.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무수히 몰려 있는 미국에서조차도 엄청난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경제학은 역시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는 오명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 때나 새로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이나 경제학자들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되풀이되고 있다. 세간의 관심이 끈 미네르바 신드롬은 건전한 의사소통과 토론문화의 부재와 함께 제도권 경제학의 한계를 드러낸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경제학이 미래예측, 특히 위기예측에 취약한 이유는 경제학이 사회과학으로서 갖는 한계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경제현상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과학적 논리와 기법을 이용해 구축된 경제모형은 경제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모형이 정밀하다 해도 경제변수에 관한 과거 자료만을 가지고 시도하는 경제전망은 과거를 미래로 연장한 수준에 불과하며 통찰력 있는 미래예측은 아니다. 경제가 불안정한 시기에는 과거의 변수행태와 자료를 가지고 한 경제예측은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가 소용돌이치는 시기일수록 시장참가자들의 미시적 동기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으며 어떤 파급경로를 거쳐 경제 전체의 거시적 행태로 나타나느냐에 관한 직관과 통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제학이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경제시스템을 다소 느슨한 질서체계를 가지고 진화하는 조직체로 보는 시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제는 규칙성에 근거를 둔 물리적 현상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경제현상은 아주 규칙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불규칙적이지도 않은 중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경기변동이 흔히 기상현상에 비유되는 이유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규칙적으로 변하면서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불규칙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급변하는 과정에서는 경제주체들의 조그만 심리적 충격조차도 자기조직화(self-organizing)를 강화시키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몇개월간 금융시장이 보여준 불안정한 움직임이 그 좋은 예이다. '위기 본질' 진지한 성찰 필요
금융위기가 경제학에 던진 또 다른 과제는 제도에 대한 신뢰가 지나쳐 시장위험에 대해 과소평가를 하게 되면 위기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모범적인 규제제도를 가진 국가에서 개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은 선진화된 제도를 가지고도 위험을 완전하게 감시ㆍ감독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시장에서 자생하는 위험을 제도 스스로가 부정하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인해 제도적 감시에 실패했다. 앞으로 경제학은 제도를 움직이는 이해관계자들의 인지 부조화를 어떻게 유효하게 다스릴 것인가에 관해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경제는 안정된 선형관계를 가지고 바람직한 균형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안정한 비선형관계를 가지고 바람직하지 않은 균형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런 속성으로 인해 경제위기는 예측하기가 힘들며 위기가 닥쳐야 비로소 위기임을 드러내는 속성을 갖고 있다. 경제학이 위기예측보다는 위기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보다 심혈을 기울인다면 위기는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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