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규제혁파 제로 베이스에서(사설)

「규제왕국」「기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의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될까.고건총리가 취임 첫 약속인 규제혁파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왔다. 구체적인 추진 방향과 일정도 제시했다. 규제완화가 아니라 규제혁파라고 표현했다. 규제 혁파는 이미 신물나게 들어온 것이고 신선한 발상도 아니지만 이번엔 과거와 달리 뭔가 제대로 될 것 같은 예감을 갖게 된다. 문민정부는 4년동안 내내 규제완화를 부르짖어 왔다. 늘 국정과제의 상위에 올라 있었다. 행정쇄신위원회나 경제행정규제개혁위원회니 해서 기구도 만들었다. 정부기구와는 따로 민간기구도 생겼고 수없이 많은 요청과 건의도 제안되었다. 그러는 사이 5천여건의 규제가 풀리거나 완화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직 1만여건이 남아 국가경쟁력 강화와 경제활성화의 족쇄가 되고 있다. 풀었다고는 하지만 규제완화를 실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풀었다고 하는 내용이란 고작 행정 절차같은 지엽·말단적인 것들이어서 실질적인 효험이 없다. 때문에 아직도 공장 하나 짓는데 1만쪽이 넘는 서류를 만들어야 하고 2년이상 관계 관청을 오락가락해야 하며 수없이 많은 도장을 찍으면서 「급행료」를 내야 한다. 이게 그동안 규제완화의 실상이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위에서는 규제를 없애라, 완화해라 하지만 시행부처와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부처이기주의와 공무원들의 밥그릇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규제를 푼다해도 지엽적인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규제를 하나 풀면 2개의 규제가 생겨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규제완화가 새 규제를 낳아 규제는 풀어도 풀어도 없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규제혁파는 불지하세월일 수밖에 없다. 국가경쟁력이 향상되고 기업경영환경이 좋아 질 리가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올해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정부행정 서비스부문이 36위(46개국중)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중 정부행정규제가 가장 심해 꼴찌로 평가됐다. 경제침체, 고비용구조, 경쟁력약화, 기업환경 열악, 외국인투자저조등의 병인은 얽히고 설킨 규제에 있다. 이제 더 이상 규제혁파를 머뭇거리거나 미룰 수 없다. 자율과 창의로 선진국 진입을 앞당기기 위해서, 또 개방화 세계화 틀에 맞추기 위해서 규제혁파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고 일몰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진일보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정권말기에 선거계절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실천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규제혁파를 제대로 해볼 의지가 있다면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하는 게 옳다. 모든 규제를 없애고 꼭 필요한 규제만 신설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작은 정부가 병행 추진되어야 한다. 공무원의 수는 규제의 양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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