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5월 10일] 우즈베키스탄에서 본 '김우중'

5년 전 기자는 외환위기 직후의 취재 경험을 녹여 '김우중 오디세이, 세계 최대의 파산'이라는 책을 냈다. 대우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수십조원의 혈세가 들어갔지만 당시만 해도 시중의 서적은 '인간 김우중'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 기자는 이런 관념을 깨고 싶었고 그가 일궈온 기업의 생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반칙의 역사'를 들춰내고 싶었다. 부패와 차입에 의존하는 한국형 기업의 한계에 대한 반성, 이를 통해 만들어진 일그러진 한국 기업의 트라우마가 책을 쓰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5년 후. 기자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 총회가 열린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를 찾았다. 일인당 소득은 고작 1,000달러를 넘는 나라지만 깨끗하게 단장한 도심은 옛 소련이 1차 대전 직후 회심의 복원 작품으로 만들려 했던 의지를 담아 낸 듯 몇 배의 국부를 지닌 동남아의 여느 국가보다 오히려 나았다. 하지만 이런 외견보다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차량들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부터 남미, 하물며 적도 근처의 파푸아뉴기니까지 많은 나라를 둘러 보았지만 타슈켄트 거리는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옛 대우의 영광이 품어내는 물결이었다. 타슈켄트 시내는 마티즈와 르망, 그리고 라세티ㆍ다마스로 가득했다. 현지의 한 인사는 적어도 3분의2 이상이 대우가 만들어낸 차라고 귀띔했다. 그나마 20년이 넘는 옛 소련제 차량들을 빼면 도시 전체가 대우차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구 어느 땅에서나 볼 수 있는 일본 차의 물결을 이곳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옛 대우의 우즈베키스탄 생산법인이 지금은 GM과 현지 정부에 넘어갔지만 현지 국민은 그들의 차를 보면서 여전히 코리아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인에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추락해 재기의 기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 인간 김우중. 그에게 찍힌 '차입경영, 혈세 투입의 주범'이라는 낙인은 아마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남겨놓은 '세계 경영' 모토와 이를 통해 이룩한 글로벌 한국의 의지는 퇴색돼서는 안 될 가치다. 삼성이나 LG가 누리는 영광도 어쩌면 그가 일찍이 만든 터전 아래 이룩된 것일지 모른다. 5년 전 책을 만들면서 미처 적어내지 못한 '김우중과 그가 만들어 낸 코리아', 그리고 한국의 기업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벌이는 혈투에 대한 고마움을 뒤늦게나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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