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새로운 꿈을 꾸는 곳 ‘백년몽원’

국내외 젊은 유망작가 24명 참여 <br> 난지갤러리에서 9월4일까지





‘백년몽원(百年夢源)’전이 개막하던 22일, 서울 상암동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난지갤러리에는 소나기가 쏟아졌다. 변덕스런 여름 날씨를 탓하던 관람객이 “소금으로 된 작품은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소복이 쌓인 하얀 소금 위에 삽과 꽃 등이 꽂혀 있는 문명기 작가의 설치작품 ‘정원사 되기’다. 사라짐과 상실의 시각적 기록을 전개해 온 작가는 “어차피 바람에 날리고 비에 씻겨 사라질 작품이라 상관없다”라며 외려 웃었다. 아름다움을 인공적으로 가꾸는 행위를 풍자한 작업이라 내리는 비도 괜찮다는 듯. 합성어인 ‘백년몽원‘의 ‘백년’은 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하는 100년이자 급속한 산업화와 세계화가 진행된 지난 1세기를 가리키며,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서 착안한 ‘몽원’은 한국적 이상향을 의미한다. 한 세대의 다양한 꿈을 뜻하는 조어로 이번 전시의 공동기획자인 김기라씨가 고안한 개념이다. 전시에는 국내외 젊은 유망작가 24명이 참여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저항적 비평주의’. 보편성과 국제적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독창적이고 자생적인 예술관을 지켜가는 이들이다. 함께 전시를 기획한 이진명 큐레이터는 “우리 작가들 중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서구 미술의 경향을 그냥 수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전시 작가들은 각자의 사회적 정황에서 배태(胚胎)된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빗물에 씻겨 작품이 사라지는 문명기 작가의 경우처럼 이들은 보수적인 상업성은 신경쓰지않는다. 깨지기 쉬운 재료로 견고해 보이는 형태를 만드는 조각가 정재욱은 두께 0.8mm 미만의 얇은 석고판으로 커다란 벽을 만들었는데, 종잇장이나 비닐처럼 보이는 이 장막은 전시가 끝나면 깨져버릴 작품이다. 예술품에 집착하지 않고 예술가의 행위와 과정 자체만을 중시했다. 글자를 모아 산수화를 그리는 유승호는 알파벳으로 신작 산수풍경을 선보였고, 사진작가 권순관은 현실과 가상의 중간을 포착했다. 연출 사진의 ‘제작과정’을 찍은 권순관의 작품 내용에 맞춰 ‘전시과정’을 보여주려는 듯 나무도막과 비닐 등이 액자 아래에 함께 설치돼 있다. 신화적인 동굴을 그린 안두진은 서양에는 없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다. 형광색 같지만 단청색에 가깝다. 색은 세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나 숭고미를 표현한다. 맞은 편 검은 덩어리는 흑연으로 만든 유비호의 작품이다. 그의 영상작품 속 사나이는 옥상에서 골프공을 반복해 치고 있는데 공은 몇 m도 채 못나가고 떨어지곤 한다. 한국의 도시문명을 설치미술로 표현하는 작가 박은영은 버려진 박스를 모아 하늘로 솟는 마천루를 제작했다. 흰 벽에 비친 그림자, 검은 천장 유리에 비친 모습이 쌍둥이 같다. 무한대로 수직상승하듯 쌓이는 인간의 욕망을 꼬집었다. 종교적 유토피아의 허무를 말하는 장종완의 그림은 일명 ‘에덴회화’다. 선교 팸플릿 이미지를 패러디 한 그림은 에덴동산의 사람, 멸종 위기의 동물 등을 담고 있어 몽롱한 현실의 이상향을 보여준다. 현대 정보사회의 기능과 한계를 독창적으로 타진하는 차동훈의 작품은 전형적인 혹은 복제된 현대인 집단에 대한 냉소를 담고 있다. 산업화와 서구화의 주제를 만화적으로 그려 자수 병풍으로 제작하는 강승희의 작품도 지극히 풍자적이다. 현재 갤러리루프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작가 한경우는 교묘하게 설치한 가상 공간에서 실시간 CCTV를 통해 본 ‘착시’를 전시한다. 이창훈은 안국동사거리와 종로2가가 표기된 교통표지판을 무관한 자연으로 옮겨다니며 영상을 제작해 사회가 부여한 인식체계에 ‘착각’을 일으킨다. 전시장 외부에 걸린 오윤석의 실크작품은 주술적 세계를 예술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 반야심경의 색즉시공을 풀어낸 노란색 천은 부(富)를, 요한계시록을 남은 분홍색 천은 안정을 의미한다. 수행과도 같은 작가의 태도가 담겨 동양과 서양, 소멸과 생성이 공존한다. 작가 장재록은 BMW자동차의 엔진을 설치했다. 수묵으로 고가의 자동차를 그리는 작가가 산업주의의 새하얀 속내를 끄집어 낸 셈이다. 이원호의 작품은 탁구대다. 탁구대의 흰 선(線)을 일일이 오려내 한가운데 사각형으로 모아뒀다. 선 밖에 공이 닿으면 ‘아웃’인 탁구 규칙을 적용하면 모두가 아웃이 된다. 경계를 재배치하는 것이 작가의 일관된 고민이다. 참여한 외국작가들은 영미 중심의 상업미술에 반기를 들고 있다. 영국작가 윌 볼튼은 벽지 문양 같은 패턴을 자신만의 음악적 수식으로 분해해 음향으로 전환한다. 전시장에 울려퍼지는 웅장한 사운드는 특정한 공간을 음악적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네덜란드 작가 욥 오버툼은 정치적인 주제를 상징적으로 숨긴 대신 자연에 은유하거나 허름한 풍경으로 보여준다. 캐나다 작가 롭 제임슨은 동양의 탈처럼 성인남자 5명의 얼굴을 만들었는데 이들의 그림자는 콘돔을 씌운 남자의 성기모양이다. 페트(PET)병 속에 넣은 집과 나무에 매달린 건물을 만든 요그 오버그펠이나 스페인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고르카 모하메드 등도 기발하다. 이번 전시는 9월4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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