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미술계 ‘튼실한 허리’의 숨겨진 모습

서울시립미술관 SeMA 중간허리 ‘히든트랙’전 <br>왕성한 50대 이상 중견작가 19명의 숨겨진 작품들


한국 현대미술계를 지탱하는 ‘허리급’ 작가들은 누구일까? 대략 30년의 시간을 갈고 닦아 각자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형성한 50~60대 중견작가는 그 역량이 정점을 찍은 황금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인체에 비유해 ‘허리’라 부를 수 있는 세대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이들 중 국내외 활동이 활발한 작가 19명을 추려 ‘SeMA 중간허리 2012: 히든트랙’전을 19일 개막했다. 앞서 4월에 열렸던 ‘청년작가전’이 부제로 ‘블루(Blueㆍ푸른색)’를 내세운 데 이어 이번 ‘중간허리전’은 ‘골드(Goldㆍ황금색)’를 상징색으로 내걸었다. 김홍희 시립미술관장은 “황금색은 인생의 절정과 완숙미, 풍성함을 두루 아우르는 색으로 50~60대 중견작가들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가 여느 기획전과 다른 점은 작가의 대표작이 아닌 숨겨둔 ‘히든트랙’을 찾아냈다는 것. 전시기획자인 외부 초빙큐레이터 김성원 국립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19명의 작가를 선정한 다음 이들이 구축해온 작품세계가 아닌 보여주지 않았던 전혀 다른 작품을 공개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전망을 모색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오른쪽으로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게 드리워진 여러 개의 그물들을 만나게 된다. 임옥상의 작품으로 바닥에 놓인 화분에서 나팔꽃이 싹을 틔워 전시기간 내내 그물을 타고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바닥도 놓쳐서는 안 된다. 입구부터 1층 안쪽까지 곧게 뻗은 검은 바닥 ‘레벨 캐스팅, 마루-되기’는 홍명섭의 설치작품으로, 전시장으로 안내하는 ‘레드카펫’격이라 할 수 있다. 그 위로 주황색 풍선에 매달린 인물상이 보인다. 안규철의 스티로폼 조각 ‘불완전한 비행’으로, 날아오르지도 내려오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를 두고 작가는 불안한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왼쪽 입구로 들어서면 ‘맨드라미’ 그림으로 유명한 김지원의 작품이 관객을 맞는다. 출품작은 1990년대 현실에 대한 발언이 두드러졌던 그의 미공개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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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작가로 1990년대에 핏빛을 떠올리게하는 분홍색 그림으로 유명한 최민화는 ‘19금’ 별도공간을 배정받아 적나라한 포르노그래피 연작을 내놓았다. 1990년대에 최경태라는 작가가 외설적인 포르노를 그려 구속됐던 사건을 모티브로 시대상황에 대한 각성과 비판을 담아 제작된 것이다.

리얼리즘 작품으로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표현해 온 최진욱은 1989년에 그렸으나 발표한 적 없었던 추상화를 출품했는데, 그림 하단에는 보관 중에 뚫린 쥐구멍이 눈에 띈다. 세월의 흔적이다.

미로 같은 구조의 검은 방을 따라 들어가 그 끝에 놓인 하얀 나무를 만나게 하는 조덕현의 초현실적인 작품,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 그린 미니멀한 추상화와 자연에서 수집한 재료를 유리박스에 넣어 전시한 윤동천의 ‘단색연작’과 ‘무제’ 등은 아무런 배경지식 없는 상태에서 보더라도 상상과 사색 만으로 충분하다는 ‘열린 감상’을 제안한다.

‘몽유도원도’를 연상시키는 회화작업으로 유명한 문범은 문자 지식과 시각이미지의 괴리를 꼬집는 대형 설치작품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고대 도서관의 유래에서 제목을 따온 ‘알렉산드리아를 떠나며’라는 작품은 박물관 전시실처럼 물건을 배치했으나, 정작 아무 상관없는 이름들을 그 아래 적어 붙인 것이다. 따라서 “무슨 뜻인지 모를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면 작가가 의도한 ‘정보의 괴리’를 제대로 받아들인 것이며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것을 현실에서도 맞닥뜨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시퀸 작품으로 유명한 노상균은 전시장 내부에 나이트클럽을 차렸다. 쿵쾅거리는 음악과 어지러운 조명이 넋을 쏙 빼놓지만 이 작품 ‘스타클럽’의 하이라이트는 갑자기 음악이 꺼지고 밝은 조명이 켜지는 순간으로, 관객은 예상치 못한 당혹감에 이어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스스로를 깨우는 찰나를 경험하게 된다.

이번 참여작가 중 막내인 사진작가 오형근은 자신의 기존작품을 선보이되 액자 없이 전시하는 파격에 도전했다. 그림 이상으로 액자가 중요한 사진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날 것과 맨 살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덕분에 주변인을 촬영한 그의 작품이 생경함과 어우러져 오히려 빛난다.

강홍구ㆍ고낙범ㆍ김용익ㆍ육근병ㆍ윤영석ㆍ이기봉ㆍ황인기ㆍ홍성도 등 곱씹을수록 흥미로운 이들의 작품은 오는 8월26일까지 전시된다. (02)2124-8800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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