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은 지난 2004년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했던 하이닉스반도체를 살리기 위해 시스템반도체 부문인 매그너칩을 해외 투자펀드에 매각했다.
모회사의 자금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렸지만 위탁생산과 패키징(반도체 조립)을 주로 했던 매그너칩은 매각 당시만 해도 탄탄한 회사였다. 하지만 매그너칩을 인수한 미국의 시티벤처캐피털은 반도체 회사에 필수적인 설비투자보다는 투자금 회수에 급급했다.
추가적인 투자를 받지 못한 매그너칩은 이후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2009년에는 또 다른 헤지펀드인 애비뉴캐피털에 넘어갔다. 매그너칩은 국내기업이 해외기업에 매각 된 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고사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과거 하이닉스의 액정표시장치(LCD) 사업부였던 하이디스도 마찬가지다. 하이디스는 중국 BOE에 팔린 뒤 LCD 관련 첨단기술들이 대거 중국으로 유출된 후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현재는 대만 기업에 인수된 상태지만 하이디스의 국내 사업장은 고사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경우 매그너칩과 하이디스에서 알 수 있듯이 해외에 매각돼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면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인수 후에도 대규모 설비투자가 계속 이뤄져야 하는데 해외기업 중 이를 감내할 만한 곳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됐던 쌍용차도 비슷한 사례다.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된 쌍용차는 2008년 금융위기와 세계 경기 악화로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결국 2009년 4월 전체 인력의 37%에 이르는 2,646명(비정규직 포함시 3,000명)에게 정리해고가 통보됐고 노조가 이에 반발, 평택공장 등을 점거하고 77일간 파업을 벌였다. 사회·경제적으로 큰 비용을 치렀지만 맨 처음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차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오히려 쌍용차의 핵심 기술만 곶감 빼먹듯 중국으로 가져갔다 .
상황은 다르지만 2002년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현대상선이 채권단의 요구로 해외기업에 팔았던 자동차수송 사업부가 이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성장한 것도 회사 입장에서는 뼈아픈 기억이다.
현대그룹은 2002년 유동성 위기와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부도위기까지 몰렸다. 그러자 당시 수익성이 뛰어났던 자동차운반선 사업 부문(운반선 76척, 영업조직·영업권 등 유무형 자산)을 1조8,000억원에 노르웨이 빌헬름사와 스웨덴의 왈레니우스사 등이 출자해 설립한 '유코카캐리어스'에 매각했다. 정부와 채권단도 매각을 압박했다. 현대는 유동성 위기는 넘겼지만 유코카캐리어스는 이듬해 매출 1조원, 영업이익 300억원을 기록하는 등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현대상선에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현대상선이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운송 사업부를 판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때 팔지 않았더라면 현재처럼 수익성 변동이 심한 컨테이너 부문에 대한 쏠림현상도 막아 리스크 분산에도 도움을 줬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