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상전벽해 구로공단 50년] 여공의 땀·눈물 밴 곳… 수출 33억달러·일자리 16만개 일구다

노동집약적 제조업 1번지 60~70년대 성장 이끌어

슬럼화 등 위기 맞았지만 IT 첨단밸리로 리모델링

입주기업수 384배 급팽창

'벤처 요람' 향해 잰걸음

''한강의 기적'' 교두보, 국내 최초 산업단지로 조성된 구로공단의 1967년 모습. 한때 한국 수출의 10%를 차지할 만큼 경공업 수출전진기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진제공=산업단지공

산업화의 주역들, 1960년대 구로공단의 한 봉제공장에서 앳된 얼굴의 여공들이 ‘미싱’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단지공단

IT밸리로 대변신, 2000년대 들어 서울디지털단지로 탈바꿈한 구로공단에 고층 아파트형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진제공=산업단지공단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10대 소녀 장미숙(가명)양은 홀로 고향집을 떠나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부푼 꿈과 달리 화학약품 냄새와 먼지가 코를 찌르는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미싱'을 돌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가리봉동 벌집촌 쪽방은 닭장집으로 비유될 만큼 좁디좁았다. 비키니옷장이라도 들여놓으면 몸 하나 겨우 누울 공간만 남았다. 그마저 월세가 부담돼 교대근무를 하는 여럿이 2~3평 방을 함께 쓰고는 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한국 산업단지의 비약적인 성장에는 이처럼 지난 1960~1970년대 구슬땀을 흘리며 구로공단에서 청춘을 바친 여공들의 값진 희생이 녹아 있다. 가발·봉제·완구 등 저임금 제조업을 토대로 중화학공업에 도전한 끝에 대한민국은 마침내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구로공단이 조성된 지 50년이 흐른 11일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출근길. 역을 빠져나온 수많은 인파는 첨단 정보기술(IT)밸리로 거듭난 서울디지털단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현재 서울디지털단지 입주기업은 1만1,911개사. 1967년 31곳에 비하면 약 384배가 늘었다. 당시 2,460명을 고용해 100만달러 수출을 기록했던 구로공단은 현재 16만2,000여명이 연간 33억2,300만달러어치를 해외로 내다 파는 대표적인 국가산업단지로 우뚝 서 있다.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로 출발한 구로공단은 대표적인 경공업 수출 전진기지였다. 이렇다 할 자본이 없던 1960년대 정부는 간신히 재일교포의 돈과 기술을 유치해 한국 최초의 산업단지인 구로공단을 세웠다. 노동집약 수출업체들의 입주를 시작으로 1977년에는 10억달러 수출 실적을 올리며 국내 전체 수출액의 10%를 차지했다. 이처럼 등 1960·1970년대 경제성장을 이끈 곳이 바로 1번지 공단인 구로공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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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업을 선도했던 구로공단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임금상승, 3D 업종에 대한 기피, 대규모 제조공장의 지방·해외 이전 등으로 점차 공동화·슬럼화 현상이 깊어져 갔다. 1987년 4개사에 불과하던 해외진출기업은 10년 새 10배 이상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고용은 절반으로 줄었다. 수출 또한 반 토막이 날 만큼 위기가 찾아왔다.

경공업 선도공단의 사명을 다한 구로공단은 2000년대 들어 첨단 IT밸리로 재탄생했다. 2000년 12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이 바뀌고 강남의 IT기업들이 들어왔다. 1999년 4개에 불과하던 지식산업센터는 2012년 105개로 약 26배 증가했다. 지식산업센터를 중심으로 IT산업단지로 거듭난 구로공단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신에 성공한다.

40여년간 구로에 터를 잡고 전자부품을 제조해온 성호전자의 박환우 대표는 "빨간 지붕의 제조공장들이 이제는 아파트형 공장으로 변했다"며 "당시 터를 잡고 국내 수출을 주도했던 기업들 대부분은 반월·시화나 남동공단 등으로 이전했고 현재 구로는 젊은층이 넘치는 IT밸리로 탈바꿈했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단지가 급격히 도시형 첨단단지로 변모하자 문제들도 생겼다. 한 입주업체 대표는 "고밀도 개발로 인해 활동인구 급증하자 교통난은 심각해졌고 주거·교육·문화시설부족으로 정주 여건이 악화된 것이 현실"이라며 "제조업 중심의 산업단지 관리 방식이 전면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최대 벤처기업 집적지로 불리지만 상암·판교 등 신흥 클러스터와 비교해 비싼 임대료 등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점도 큰 약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관리기관인 산업단지공단은 국내 최대 벤처기업 집적지에 걸맞게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강남훈 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은 "서울디지털단지는 근로자들의 땀과 눈물로 인해 수십년간 몰라보게 변했다"며 "이를 이어나가기 위해 벤처 집적지로서 단 지내 지원기관과 혁신주체들 사이의 시너지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강조했다. 또 "과거처럼 일만 하는 산단이 아니라 즐기며 생활할 수 있는 행복한 산업단지를 만들어 창조경제시대를 이끌어가는 성장거점으로 발돋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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