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물은 경쟁력이다] 6. 한발앞서 준비한다-싱가포르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내려 차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다 보면 잔디로 덮여진 초지가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초지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콘크리트 숲과 자연을 잇는 하나의 띠로 보인다.그러나 이 초지는 도시의 미관을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 초지를 조성한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물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한해 약 2,500mm의 많은 비가 내리지만 산이나 호수가 없어 비가 와도 모두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바다로 흘러가 버려 물이 늘 부족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물을 이웃나라인 말레이시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물부족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고심하던 정부는 빗물을 재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냈고, 이를 위해 빗물을 모으는 관을 도로 양 옆에 묻고 그 위를 잔디로 덮었다. 이 초지 위로는 차량은 물론 사람도 다닐 수 없도록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이 같은 현대적 관개 시스템을 갖춘 것은 지난 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한 뒤부터다. 현재 국토전체의 절반 정도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전국망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자가 방문한 8월초에도 여러 번 스콜이 내렸지만 도로에 떨어진 빗물은 순식간에 초지 아래에 묻힌 관로를 따라 집수장으로 흘러 갔다. ▲ 앞서 준비한다 싱가포르는 하루 사용하는 물의 양 가운데 절반정도인 9.1억리터를말레이시아에서 원수로 사오고 있다. 이 가운데 1.3억리터는 정수처리를 통해 말레이시아에 되판다. 원수를 1톤당 5원도 안되는 돈에 사서 정수된 물을 77원에 되파는 것. 15배 이상 남는 장사다. 물을 파는 말레이시아는 한해 310만 링기트(약 10억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이는 양국간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정수 능력을 끌어올리면서 원수 대신 정수를 사갈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싱가포르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맺은 공식적인 원수 공급계약기한이 2011년에 끝난다. 현지 물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와 별도로 2061년까지 원수를 공급받는 계약이 되어 있으나 사실상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에 따라 새로운 원수 공급지로 인도네시아 서북부 리아우주 지역을 개발할 계획이다. 15억달러를 투자해 자국 면적의 80배(5만㎢)가 되는 대규모 저수지를 건설해 450km의 해저파이프로 하루 최대 40억리터의 물을 끌어올 예정이다. 이 정도면 앞으로 수십년 뒤 인구가 600만명(현재 인구 400만명)으로 늘어나도 물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한방울의 물도 놓치지 않는다 원수 확보는 물론 떨어지는 빗물 한 방울마저도 그대로 흘려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이미 군(軍)에서는 빗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새로운 주거지역을 개발할 때 반드시 빗물을 모아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을 해 흐르는 지표수까지 모을 계획이다. 하수도 예외가 아니다. 싱가포르는 향후 10년내에 수영장 100개를 채울만한 양의 하수를 재활용할 방침이다. 이는 하루 화장실에서 사용되는 물과 하수 처리 시스템을 통해 쌓인 물의 20% 수준에 달한다. 물 주관부서인 환경부는 현재 5%에 머물고 있는 하수 재활용(산업용수) 능력을 대폭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연초에 내놓았다. 환경부는 최첨단 하수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해 산업용수를 넘어 심지어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을 만든다는 야심찬 방침이다. 이른바 '뉴워터(Newater)'정책이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 북부에 있는 베독 하수 재처리 공장의 처리 능력을 대폭 늘릴 예정이다. 현재 하루1,000만리터의 물을 처리하는 베독 공장의 능력을 최대 20배 늘어난 2억리터로 끌어 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 대규모 물 프로젝트 하저터널하수시스템(DTSSㆍDeep Tunnel Sewerage System)은 70억 싱가포르 달러(약 5조원)가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는 현재 하수 처리시스템을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대역사다. 향후 20년간 싱가포르를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는 2개의 대형 하수터널을 만들어 동쪽 투아스 지역과 서쪽 창이 지역에 있는 처리장으로 모을 방침이다. 길이 80kmㆍ직경 6.5m에 이르는 터널을 지하 50m에 만드는 것. DTSS가 완성되면 그동안 싱가포르내 6개 하수 처리장과 134개 펌프장이 하던 역할을 투아스, 창이 처리장 단 두 곳이 대체하게 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관계자는 "싱가포르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역사"라면서 "정부, 민간 모두 기대하는 정도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해수 담수화도 정력적으로 추진된다. 오는 2005년부터 해수 담수화 공장 2개를 세운다는 원칙을 세우고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사업 착수에 나서고 있다. 바닷물을 이용한 담수처리 비용은 최근 1,000리터에 900원 수준이다. 이는 10년전에 비해 비용이 1/3로 줄어든 것. 담수화 기술이 계속 발달하고 있어 비용도 수년내에 600원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부지역에 있는 주롱 산업용수 처리장의 처리능력도 늘릴 계획이다. 약 1억싱가포르 달러(750억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 처리능력을 하루 1억2,500만리터로 끌어올려 주롱 산업공단의 산업용수는 자체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싱가포르=최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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