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지도자의 자질


요즘 유럽의 정상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서로를 향해 내뱉는 말들을 보면 한 편의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지난 23일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 막말을 내질렀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회원국 정상들만 참석하게 돼 있는 회의에 유로존이 아닌 EU 회원국들도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캐머런 총리에게 사르코지 대통령은 "입 다물라"고 쏘아붙인 뒤 "당신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데 진저리가 난다"고 퍼부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이날 정상회의에서 굴욕을 당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에게 거친 톤으로 재정긴축 압력을 가했고 암암리에 그를 조롱거리로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과 프랑스의 협공에 자존심이 구겨진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성명을 통해 "EU의 어느 국가도 다른 나라를 훈계할 권한이 없다"고 반박 성명을 내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간섭에 불쾌해 했던 이탈리아 국민에게는 적잖이 호응을 받은 모양이지만 방만한 재정운영 때문에 이탈리아가 유럽과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이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사생활이 문란하기로 소문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몇 달 전 한 언론매체의 편집장에게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가리켜 "성적 매력이 없는 비계 궁둥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을 쓴 사실이 알려져 한차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재정위기 해법을 둘러싸고 끝없이 이어지는 공방에 지쳐가는 탓일까. 정상들의 언행에는 원색적인 색채가 날로 짙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은 감정에 치우쳐 사분오열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다. 당장 유럽 각국이 합의를 도출해 위기봉합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생각 없이 뱉은 말은 훗날 더 큰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정상들끼리 최소한의 예우도 갖추지 못하는 국가들끼리 어떻게 함께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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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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