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공적자금 공포 벗어나자] "부실 예방" 컨센서스 이끌어내야

'시체처리용' 환란때 공포에 사로잡혀 자금지원등 꺼려<br>정작 필요할때 失機해 오히려 위험 키울 가능성<br>과거와 달리 '부실화때만 책임추궁' 원칙 정해야


한국에서 공적자금은 악몽 그 자체다. 주체인 정부나 대상인 은행 모두 공적자금 하면 잊고 싶은 과거 기억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과감하고도 신속한 정책 집행이 필요한데 현재의 공적자금 이미지는 이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현재의 공적자금은 부실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적 정책 수단임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 전문가는 “정부나 은행 모두 공적자금을 두려워하고 있다. 은행은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주주가 물러나고 책임추궁을 받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외환위기 때의 공적자금과 지금의 공적자금은 기능과 성격이 다른데도 한국 사회 전체에 이에 대한 컨센서스가 전혀 형성돼 있지 않다”고 전했다. ◇공적자금 기능, 현재와 과거 다르다=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1차와 2차에 걸쳐 금융기관 등에 160조원의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여했다. 현재도 공적자금 빚은 다 상환하지 못한 상태다.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 투입은 이미 부실화된 은행과 기업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당시 주요 시중은행들은 자기자본이 잠식됐으며 우량 은행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8%를 넘긴 곳이 없었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BIS 비율 8% 미만은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되며 한마디로 은행이 갈 데까지 간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국가경제의 근간인 은행과 대기업이 동시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은 부실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시체의 사후 처리 용도로 사용된 셈이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현재의 공적자금은 시체 처리용이 아닌 사전 부실 차단이 목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실물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고 만일에 있을 기업들의 연쇄부도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정부가 은행을 지원하자는 취지가 과거와 다르다”며 “전세계가 이 같은 취지하에 과감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적자금 다시 보자, MOU 체결 내용 과거와 달라야=공적자금에 대한 공포를 없애면서 효율적인 자금집행을 위해서는 양해각서(MOU) 체결시 현재의 공적자금이 사전 부실 예방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명확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 전문가는 “공적자금이 투입돼 부실이 나면 책임추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문제는 현재 공적자금은 은행이 좀 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에 따라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 서로 살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부실 추궁은 추후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이 부실화됐을 때 해도 늦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사전 부실 예방 단계에 집행되는 공적자금의 경우 MOU를 체결할 때 자구노력 강화와 배당 억제 등 공적자금 회수에 중점을 두되 감자, 지배구조 개선 등 은행이 두려워하는 항목은 넣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적자금이 국민의 혈세인 만큼 당장은 아니지만 부실화됐을 때는 지배구조 개선 등 책임추궁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자구노력과 책임추궁을 단계별로 나눠 하는 것도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공적자금의 공포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은행을 나무라고 자본확충을 도와준다고 해도 은행은 더욱 긴축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며 “(공적자금에 대해) 부실을 떠안는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차단 부실을 도려내기 위한 구조조정 자금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정부가 이에 대한 컨센서스 형성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즉 정부가 현재의 공적자금이 외환위기 때와 다른 성격과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금부터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공적자금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종배기자 ljb@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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