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정부개편' 속도가 능사 아니다

새 정부의 윤곽이 드러났다. 대통령직인수위가 18부4처의 중앙부처를 14부2처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정부조직은 이제 본격적인 수술대에 올랐다. 현행 정부조직은 지난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시대적 요구와 상황 변화에 조응해 부분적인 개편이 시도됐으나 근본 골격은 산업화시대의 조직과 운영 방식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폭 개편될 것으로 예견돼왔다. 학계에서도 선진화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조직과 역할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직 개편의 특징은 그 전격성에 있다. 인수위가 구성된 지 불과 2주일 만에 개편안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수위의 초안이 발표된 시점이 5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주일 만에 밑그림이 이미 그려졌다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가 취임 이후인 1998년 8월부터 3개월간의 대대적인 정부기관 경영 진단을 실시해 개편 작업에 착수했던 것에 비하면 가히 전광석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조직 개편을 서두르는 이유는 ‘작은 정부, 실용 정부’로 화려하게 출범하기 위해서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 정치 일정이 매우 촉박하다는 점이 일차적인 이유로 보인다. 오는 4월 총선 이후로 개편 작업이 지연될 경우 새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충족하기 어렵고 공직사회의 동요와 저항이 지속되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부조직은 새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과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고 대선 과정에서 이미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조직은 한번 결정되면 후유증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IMF 경제위기를 초래한 재정경제원의 사례가 생생하고 세계적인 추세로 부각되고 있는 대부처주의도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1부22성청 체제를 1부12성 체제로 통폐합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지만 후생노동성 등 일부 부처의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다. 대부처 안에서의 국별 칸막이 현상은 비단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이미 목도한 사실이어서 부처 안에서의 국과 과 간의 기능과 역할을 재설계하는 정밀한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 구조 개편이 원활한 기능적 융합으로 이어지고 조직문화로 승화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실패를 야기할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인수위가 정부조직 개편의 대원칙을 ‘조직 운영의 효율성과 이를 위한 기능 재편’을 들고 있으면서도 건설교통부와 환경부 간의 물 관리 기능을 일원화고 국토계획과 환경계획을 연계하자는 해묵은 논의에 침묵하고 있다는 점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는데도 대운하 건설이라는 명분에 밀려 자칫 환경 문제에 소홀해진다면 대운하에 반대하는 국민적 거부감을 완화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조직 개편안은 이제부터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21일 개원하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야당을 설득해야 하고 4월 총선을 의식한 여당 의원들의 이해득실도 고려해야 한다. 명분과 원칙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출범 초기부터 조직적인 저항과 갈등으로 덜미를 잡힐 수도 있다.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조직 개편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안을 관철시키는 것보다 한 방향으로 국민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작업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이명박 정부가 구현하고자 하는 상생의 시대, 사회통합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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