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하수처리장의 화려한 변신

“처갓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장실은 필요악의 존재로 여겨져왔다. 대소변을 보는 행위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거북하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표현하는 용어 또한 다양하다. 뒷간ㆍ정낭ㆍ통싯간ㆍ똥구당ㆍ정방ㆍ해우소ㆍ북수간ㆍ변소ㆍ측간ㆍ서각ㆍ측청ㆍ회치장ㆍ시뢰 등등. 이같이 다양한 언어적 표현들은 은밀한 일을 보는 조그만 공간이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간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이다”라고 말했다. 화장실의 변천사는 인간 문명의 발달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인류 문명의 척도인 수세식 화장실은 1500년대 말 영국의 헤밀턴이 처음으로 발명, 변신을 거듭한 끝에 우리 안방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했다. 18세기 중반 유럽 귀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비데와 샤워 부스, 욕조가 있는 화장실은 이미 보편화됐다. 이제 화장실은 더럽고 추한 곳이 아니라 은밀하고 사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용변을 볼 때 37%의 사람들이 신문과 우편물을 읽는 등 개인적인 일을 처리한다는 통계가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새로운 욕구 충족을 위해 불룩 나온 배를 비워낼 수 있는 지혜의 장소, 인간이 기꺼이 휴식을 취하는 곳’ 등으로 칭송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화장실은 과거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과거 화장실과 함께 멀리할 대상으로 치부됐던 처갓집도 그 의미가 크게 변하고 있다. 요즘 신세대 가정에서는 남편의 부모보다 아내의 부모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육아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처가살이를 자처하는 20ㆍ30대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장모의 시대, 신모계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뜬금없는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신도시 등 각종 택지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토지공사로서는 주택단지 내 ‘뒷간’ 격인 하수처리장을 설치할 때마다 가급적 ‘멀리’ 하려는 지역주민과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하는 운명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만연한 ‘님비(NIMBYㆍNot in My Backyard)’ 현상을 보면서 이 뒷간의 사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최근 이러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주택단지 내 하수처리장을 지하화하고 지상부를 생태공원ㆍ체육시설 등 주민친화적 공간으로 꾸미자 주민들의 인식과 반응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우려했던 집값 하락도 없다고 하니 그 동안 천대받아 왔던 하수처리장의 화려한 변신은 무죄임이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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