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매년 50조원의 새로운 돈이 쌓이고 있기 때문에 해외투자 확대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려면 기금운용 인력을 대폭 늘리고 전문성도 높여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현상유지는커녕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최광(67ㆍ사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기금운용본부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은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현재 국민연금기금 적립액은 407조원을 기록하면서 세계 4대 기금으로 우뚝 섰다. 국민연금기금 규모는 2년 뒤 514조원, 오는 2020년에는 지금의 두 배가 넘는 847조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진다. 국내 주식과 채권ㆍ부동산 투자만 고집하다 보면 훗날 연금 납부액보다 지급액이 많아져 자산매각 시기에 도달했을 때 국민연금 자산매각으로 국내 투자자산이 폭락해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이사장은 "현재 국민연금기금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1을 넘어섰고 앞으로는 더 커지기 때문에 국내자산에만 투자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가능한 한 해외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해외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부동산ㆍ인프라 등 실물자산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라며 "지금까지 안정성을 고려해 선진국 중심의 투자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리스크가 조금 있더라도 성장잠재력이 큰 신흥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기술 발굴에도 주력할 계획"이라며 "투자를 위해 해외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고 있으며 경쟁관계인 해외 연기금ㆍ은행 등과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투자처를 확대하고 투자기법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금운용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최 이사장은 강조한다. 그는 싱가포르의 국영 투자회사 테마섹을 예로 들었다. 지난 3월 말 기준 테마섹의 기금규모는 1,730억달러, 운용인력은 450명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테마섹보다 기금은 두 배 이상 많지만 운용인력은 200여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최 이사장은 "테마섹은 운용인력의 40%를 외국인 전문가로 채울 정도로 앞서가고 있다"며 "우리는 전문 운용인력에게 보수도 제대로 못 주는 형편인데 세계 연기금과 경쟁하라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3년의 임기 안에 이 구조를 모두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기획재정부 등 관계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운용인력을 질적ㆍ양적으로 확대하는 기반을 닦는 것이 가장 큰 임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와 관련해 최 이사장은 국내 금융사를 적극 활용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국민연금의 해외 위탁운용사 가운데 국내 업체는 한 곳도 없으며 해외 주식이나 채권 중개기관으로만 국내 증권사가 일부 참여하는 정도다. 그는 "해외 위탁을 할 때 한번도 국내 업체를 차별한 적이 없다"며 "규정에 따라 위탁사를 선정하기 때문에 조건에 맞지 않는 국내 업체를 선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이사장은 "국내 업체를 뽑지 못해 우리가 더 답답한 상황"이라며 "국내 업체의 투자역량이 해외 업체 수준으로 올라가고 국민연금 운용전략에 적합한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투자를 맡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해외 광산이나 석유개발같이 오랜 시간에 걸쳐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는 국내 은행들이 쉽게 못 뛰어들 수도 있지만 국민연금은 투자가 적절하다고만 판단된다면 얼마든지 장기투자가 가능하다"며 적극적인 투자의지를 내비쳤다.
사회책임 투자 역시 국민연금이 제대로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라는 게 최 이사장의 입장이다. 그는 "여러 차례 연구용역을 줘 마땅한 사회책임 투자 대상을 찾아봤지만 적정 수익률을 내고 사회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는 투자처를 찾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공공성을 가졌지만 수익을 담보할 수 없는 투자 대상에 함부로 뛰어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최 이사장은 "다른 투자조건이 동일할 때 사회투자를 선택하는 개념이 돼야지 수익보다 책임이나 사회라는 가치가 우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제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투자로 기금을 불리는 것만큼 제도를 잘 정비해 제대로 걷고 돌려주는 기능도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5년 주기의 재정계산이 진행됐고 연금재정 안정성을 위해 보험료율 인상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8일 정부는 보험료율 동결방침을 최종 확정 지으며 인상 논의를 5년 뒤로 미뤘다.
보험료율에 대한 최 이사장의 생각은 "인상만이 해답은 아니다"로 정리된다. 그는 "적게 내고 더 많이 돌려받는 연금구조상 언젠가 기금이 소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연금재정에는 보험료율과 수급연령, 소득대체율, 경제성장률, 기금운용 수익률 등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미쳐 보험료율만 올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당장 인상이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이어 재정계산 시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정권 출범과 재정재계산이 5년마다 함께 이뤄지다 보니 국민연금에 대한 깊은 논의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최 이사장은 "정권 초기에는 여러 정책을 펼치느라 역량이 분산돼 국민연금에 집중하기 힘들다"며 "대통령 취임 후 2~3년째 되는 정권 중반 정도에 재정계산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안정성을 위해 국민연금소득 상한선을 높여 고소득자로부터 더 많은 연금을 걷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최 이사장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오히려 고소득자는 연금을 더 내고 싶어한다"며 "상한선을 높이면 당장 보험료는 많이 들어오지만 나중에 더 많은 돈을 내주는 만큼 재정이 악화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연금구조상 고소득층은 연금 납부액 대비 평균 1.3배를 돌려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한선을 높이려면 고소득자에 대한 연금 수익비를 1.1배 정도로 낮추는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재정안전성을 꾀할 수 있다고 최 이사장은 밝혔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를 떼어내 별도의 공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최 이사장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기금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별도의 공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는 수긍할 수 없다"며 "국민연금은 국민들이 낸 세금과 마찬가지로 노후보장을 위해 쓰인다는 점에서 다른 투자기금과 성격이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연금이 어떻게 마련됐고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해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게 최 이사장의 철학이다. 그는 "최고의 수익률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안 된다"며 "투자조직이 완전히 분리되면 새 조직의 논리대로 기금이 운용되면서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힘줘 말했다.
9월25일 정부가 기초연금안을 발표한 뒤 국민연금 임의가입자의 탈퇴가 크게 늘면서 국민연금 가입기반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 수급액이 줄어드는 구조 때문에 임의가입자들이 어렵게 국민연금을 내느니 기초연금을 다 받으려는 목적으로 탈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이사장은 "걱정할 만한 탈퇴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임의가입자 탈퇴가 심각하다고 판단됐다면 제가 먼저 나서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며 "신규 가입자도 꾸준히 늘고 납부예외자도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국민연금 가입체계가 흔들린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기초연금안이 최고로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재정여건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굉장히 좋은 안 가운데 하나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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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소진시기 예상은 제도개선 위한것… 못받는 일 절대없어 ■ 국민연금 수호자 최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