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저녁 초여름의 무더위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16강 진출전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 청소년 대표팀은 브라질과의 시합에서 10대 3이라는 어이없는 점수차로 참패하고 말았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는 브라질을 이긴다는 것은 어렵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하는 우리의 자그마한 바람은 현저한 실력차이 앞에 허망하게 날아가 버렸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이 충격적인 패배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앞으로 한국축구의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기본」을 갖추는 일이다. 어떤 분야든지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본실력이 있어야 한다. 월드컵을 유치하고 세계축구 상위권국가를 몇 번 이겼다고 해서 우리의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위험한 일이다.
우리와 함께 2002년 월드컵을 공동개최하는 일본이 우수지도자 육성, 전용구장건립, 남미와 유럽으로의 조기축구유학 등을 통하여 꾸준히 실력을 쌓아 8강에 진출했다는 사실은 「기본의 충실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60∼70년대 급속한 경제개발과정에서 생겨난 「빨리빨리」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결과만을 중시하는 「결과우선주의」를 낳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만을 중시하고 그 뒤에 숨은 과정과 노력은 무시해 온 우리사회가 이제는 「기본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해야 한다. 실력으로 판가름나는 승부의 세계에서 우연이나 요행은 결코 통할 수 없다. 기본에 충실한 실력만이 진정한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값 비싼 교훈을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 얻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기본의 중요성을 깊게 느끼게 한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 바로 「서울∼부산간 2시간대 주파」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펼치며 화려하게 시작된 고속철도사업이 이제는 그 빛을 잃은 듯하다. 잦은 설계변경, 부실 공사 시비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사업비는 당초 예상보다 3∼4배로 불어났으며 공사기간도 3∼4년 더 늦어질 것이라고 한다. 건설업에 몸담고 있는 필자로서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난 과정을 살펴보면 이 또한 우리 사회전반에 깊숙이 배어 있는 「빨리빨리」문화에 비롯된 것이다.
고속철도의 선진국인 프랑스나 일본 등은 기본 준비기간에만 20년 이상을 투자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와 비슷한 여건의 대만에서도 고속철도 사업을 시작하면서 12년의 사전준비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우리는 건설계획을 수립한지 3년만에 공사를 시작했다. 바로 이런 「빨리빨리」문화가 총체적인 부실을 초래한 것이다.
계획을 철저하게 수립하고 수차례의 도상검증을 거친 후 비로소 시공에 들어가는 선진국의 사례는 건설기반 구축을 위해 기본의 충실화에 힘쓴 미국의 경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건설업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먼저 조직적인 측면에서 적용이 유리한 군공병단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공사체계를 정립하고 점차 정부발주공사와 민간공사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는 점은 우리가 배워야할 대목이다.
미군 공병단 건설공사가 우리의 국내공사와 다른 차이점은 착공하기 전에 도면과 자재승인, 공사계획검토 등 도상에서의 검증과 사전준비 및 계획이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런 철저한 사전검토 과정으로 공사착공은 다소 늦더라도 일단 공사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공사가 원활히 수행된다.
아무리 원대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기본이 탄탄하지 못하면 그 계획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 우리는 지난 30여년간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를 중시하는 「결과우선주의」와 앞뒤 재지 않고 우선 일부터 벌여 놓고 보는 「빨리빨리」문화에 젖어 있었다.
우리가 이룩해 놓은 많은 것들을 「사상루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부터라도 기본에 충실하고 과정을 중시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양적성장뿐 아니라 질적성장을 함께 도모해야 다가오는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