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삼성전자에 박수를

“일본을 따라잡는 것은 너무 쉽다. 그저 우리 쪽에서 일본이 이룩해놓은 수준에 근접해 따라가기만 하면 제풀에 지친다. 스스로 ‘한국이 쫓아오면 우리는 안돼’라고 판단한다. 그때 단박에 추월하면 끝이다.” 지난 99년 여름쯤으로 기억된다. 메모리 반도체에 절대 의존하던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늘리면서 “몇 년 안에 세계 3~4위권에 들어갈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사업계획을 밝혔다. 日반도체업계 '삼성타도' 가속 당시 비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시장상황은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미국과 일본이 세계 시장을 독과점하다시피 했다. 삼성전자는 그저 구색 갖추기 식으로 비메모리 분야에 진출해 있는 정도였다. 이 때문에 아무리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삼성전자라고 해도 사실상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면서 ‘너무 무모한 목표’를 세워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왔다. 기자 역시 비슷한 심경으로 비메모리 분야를 담당하던 진대제 당시 사장에게 “일본을 어떻게 따라잡을 생각이냐”고 물었다. 진 사장이 이때 기자에게 했던 답변이 바로 위에서 소개한 멘트다. 그는 이밖에도 일본 기업들이 확보해놓은 인재가 대부분 학사급이라면 삼성전자는 석ㆍ박사급이 주류라는 점 등등을 들어 ‘일본 기업 타파법’을 설파했지만 기자에게 가장 뚜렷하게 각인됐던 내용은 ‘주눅든 일본 기업’이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지금 일본 기업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반도체 업체인 도시바는 최근 5,000억엔을 들여 플래시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도시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추가로 비슷한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제3의 플래시메모리 공장(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을 지을 듯한 움직임이다. 삼성전자의 플래시메모리 경쟁력을 따라잡겠다는 포석이다. 개별 능력으로 벅차다고 판단되면 몇 개 기업이 연합해서 움직인다. 이미 숱하게 보도됐다시피 지난해 히타치제작소ㆍ르네사스테크놀로지ㆍ도시바ㆍNEC일렉트로닉스ㆍ마쓰시타전기 등 5개사가 2,000억엔을 들여 차세대 반도체를 함께 생산하기로 했다. 오는 5월이면 히타치제작소ㆍ마쓰시타ㆍ도시바가 합작한 ‘IPS알파테크놀로지’가 LCD 패널 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이 모습은 지난 6~7년 전 삼성전자의 속력행보에 주눅들어 경합 분야에서 속속 손을 떼던 과거의 일본 기업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여기서 궁금한 질문을 하나 하자. 앞으로도 삼성전자는 일본 기업들을 주눅들게 할 수 있을까. 그 정도는 아니라 해도 일정한 보폭으로 계속 앞서갈 수는 있을까. 진 사장의 지적대로라면 가장 큰 요소였던 ‘기세’는 이미 우위요소가 아니다. 어쩌면 입장이 뒤바뀐 일본 기업이 훨씬 더 강한 도전의욕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기업에 유리했던 원ㆍ달러 환율이나 엔ㆍ달러 환율 움직임도 이제는 일본 기업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지금 정부까지 나서서 기업들의 투쟁의지를 북돋우고 있다. 전사회적 응원으로 힘 실어줘야 반면 삼성전자는 어떤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지만 주변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뽐내는 제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이다. 이쯤되면 ‘선두주자 피로감’은 증폭되게 마련이다. 박수치는 관객이 없는 무대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가수라 해도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어디 흠잡을 데가 없을까’ 하고 싸늘한 시선만 보내는 감시자들만 잔뜩 있다면 더더욱 흥이 나지 않는다. 제대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삼성전자는 지금 몹시 피곤해 보인다. 각자의 원인은 다르지만 6~7년 전 일본 기업도 이처럼 피곤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기업이 사회공헌활동을 펼칠 때 커다란 박수를 보냈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들일 때도 힘찬 박수를 보내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능하다면 정부와 정치권도 박수부대에 가세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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