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참패가 현실화된 열린우리당에 거센 후폭풍이 몰아칠 기세다.
`선거책임론'이 그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김두관(金斗官) 최고위원이 `선거패배'를 전제로 정동영(鄭東泳) 의장의 사퇴와 탈당을 촉구하면서 당내 갈등의 불씨는 점화돼 있는 상태다.
여권에 대한 총체적인 신뢰 붕괴를 직접 체험한 여당 지도부는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지겠다"는 입장이다. 등 떼밀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31일 출구조사를 지켜 본 뒤 기자들과 만나 "선거를 책임진 당 의장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고 이에 따른 크고 작은 책임을 질 것"이라고 사실상 사퇴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30일 저녁과 투표당일 측근 의원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한 뒤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정 의장은 여당내 최대 주주이자, 유력한 대선주자로서 선거패배를 계기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까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의장은 이미 마음의 결심을 굳혔다. 홀가분하게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선거패배의 직접적 책임론에서는 일정부분 벗어나 있긴 하지만 김근태(金槿泰)최고위원 역시 고심끝에 사퇴 입장을 결정했다고 한다.
2.18 전대의 차(次)순위자로서 정 의장 사퇴시 의장직을 승계해야 하는 것이 도리이고, 책임있는 당의 지도자로서 `구당(求黨)'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도 일부 측근사이에서 제기됐지만, 김 최고위원은 구차하게 자리에 연연하는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이 사실상 사퇴입장을 정함에 따라 김두관, 김혁규(金爀珪) 조배숙(趙培淑) 최고위원 등 나머지 지도부도 선거 패배의 연대책임 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사퇴카드'가 당내에서 수용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당내중진들이 막아서고 있다. 공멸의 위기감 때문이다.
열린우리당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정 의장과 김 최고위원의 사퇴는 당의 무주공산을 의미한다. 뚜렷한 대안도 없다. 문희상(文喜相) 유인태(柳寅泰) 의원 등 중진들이 적극적 만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유다.
이들은 30일 저녁 모임을 갖고 "지도부 동반사퇴는 안된다"는 데 의견을 모은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진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 의원들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한 초선 의원은 "선거만 끝나면 지도부가 사퇴하는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내에서는 현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표명하더라도 `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에서 이를 반려하는 형식으로 단기간에 선거책임론 파문을 일단락시켜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침까지도 나돌고 있다.
이는 선거 이후 정치권의 재편 움직임과도 일정정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당이 구심력을 잃고 표류할 경우, 정파간 이합집산 와중에서 주도적 역할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것이다.
한 재선 의원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니냐"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성난 민심의 소재를 확인한 여당 지도부의 `사퇴 카드'와 누란위기의 당을 살려야 한다는 `구당파' 들의 만류 사이에서 최종 결론이 어떻게 도출되느냐에 따라 여당내 2차 후폭풍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불과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독일 월드컵 축구열풍이 당내 갈등의 휴지기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도 지도부의 진퇴 문제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