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현대판 주홍글씨

김현수 산업부기자

‘배신자의 집’ LG칼텍스정유 노조원이 파업에 불참한 동료노조원 집에 ‘배신자의 집’이라는 유인물을 붙였다. 또 이를 사진으로 찍어 노조원들이 보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10장이 넘게 붙어 있는 유인물에는 ‘당신의 불참은 동료를 죽이는 배신행위입니다. 자식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시오!!’라고 적혀있다. 이는 17세기 중엽 청교도적 삶을 강요하면서 헤스터 프린에게 가슴에 평생 ‘A’자를 품고 살도록 했던 주홍글씨의 판결과 다름 아니다. 강경 노조원들은 또 파업에 불참하거나 파업에서 이탈해 업무에 복귀한 노조원들에게 ‘가족의 소리’라는 노조 게시판에 실명을 거론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함께 ‘여수에 살 수 있나 보자’는 협박성 글도 올리고 있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소외받는 노동자의 노동 3권 중 합법적인 파업은 언제나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파업을 위해 개인의 인격과 생존권을 말살하는 행위는 파업의 정당성을 지켜주지 못한다. LG정유 노조는 파업 초기부터 고임금 노동귀족의 배부른 투쟁이 아니라 전체 지역사회의 권익을 찾기 위한 파업이라고 강조했다. 집단이기주의로 비치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사회의 권익을 찾기 위해 의견이 다른 동료에게는 테러를 가해도 된다는 말인지 궁금하다. 파업의 정당성을 찾기보다는 파업 불참자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노조의 모습은 이미 집단이기주의를 넘어섰다.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내치는 모습이 노조의 모습이라면 애당초 성향이 다른 사측과는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는 ‘파업을 위한 협상’이라는 말이 된다. 이 상태라면 LG정유는 파업사태가 해결된다 해도 심각한 후유증을 앓을 것이다. 노조원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아무일 없던 것처럼 얼굴을 마주보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올해 노동계의 하투(夏鬪)에서 가장 많이 불려진 ‘비정규직철폐투쟁가’라는 노동가요 가사 중 ‘쓰러진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동지를 보듬어 안고’라는 구절이 있다. 과연 식구 같던 동료도 보듬지 못하는 LG정유 노조가 비정규직을 보듬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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