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기업 망치는 부실 감사] <하> 회계는 공공재다

소유·경영 미분리 기업 '감사인 지정' 확대를

회계법인 재무·인사 컨설팅 금지 범위 확대해

기업 - 감사인 유착관계 근절·회계 투명화해야

감사인 업무 가중시키는 감사시기 분산도 필요

지난해 10월 초 동양그룹 기업어음(CP)와 회사채 투자 피해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치권은 동양그룹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거나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해 감사인 지정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발의했다. /서울경제DB


건전한 자본시장의 근간인 투명한 회계에 대한 책임은 회계사들에게만 있지 않다. 사회 전체가 회계 감사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고민해야 한다. 정부·기업·시민 사회는 회계사들이 독립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고, 회계사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부실 감사를 살펴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회계사들이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감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외부감사인 지정 범위 넓혀야=현행 자유수임제는 회계법인들이 감사용역을 따내기 위해 과다 경쟁을 하도록 만들고, 결과적으로 감사의 질을 떨어뜨린다. 전문가들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고 기업들의 회계 감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현재 1%를 조금 웃도는 '감사인 지정제'를 보다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사인 지정제란 공정한 감사가 필요한 기업에 대해 금융당국이 외부감사인을 직접 지정해주는 제도다.

회계법인의 한 대표는 "선진국에서는 지난 2008년 리만사태 이후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공적 성격을 가진 법인이나 상장 법인에 대한 지정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감사인 지정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감사인이 지정된 곳은 전체 외부 감사 대상 기업 2만 2,331개 중 1.2%(273곳)에 불과했다. 2005년에는 3.3%였다. 특히 소유와 경영이 분리 안된 기업과 소액주주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상장사, 불특정 다수의 예금주 및 거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금융사에 대한 지정제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황인태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2001년 기업 내 감사인선임위원회 제도 도입 이후 소유·경영 미분리 기업에 대해서는 감사인 지정을 면제해 주었으나 감선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자산 1,000억원 이상의 소유·경영 미분리 기업은 감사인을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소유·경영 미분리로 감사인이 지정된 기업은 지난 2000년 전체 감사인 지정 기업 108곳 중 29개로 가장 큰 비중(26.9%)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에는 단 1곳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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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인회계사회는 "상장사의 경우 소액주주들이 많아 감사에 실패하면 피해가 커 우선적으로 지정제를 확대해야 한다"며 "금융회사도 비상장사라 할지라도 불특정 다수의 예금주나 거래자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지정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4대 회계법인의 한 부대표는 "처음 외부감사 대상이 되는 기업에 한해 의무적으로라도 감사인을 지정하면 내부 감사 시스템과 감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기업-감사인 유착 관계 끊어야=기업과 감사인 간의 유착 관계 근절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회계법인이 재무·인사등에 관한 컨설팅과 감사 용역을 동시에 맡을 경우 회계사들의 독립성이 약해질 개연성이 커 컨설팅 업무의 금지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우리나라는 △회계기록과 재무재표 작성 △내부감사업무 대행 △재무정보체제 구축 또는 운영 △회사의 자산·자본 매도를 위한 가치평가 등 4가지 컨설팅 업무에 대해 제한을 두고 있다. 황 교수는 "모든 컨설팅을 막는 것은 회계법인의 기업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국제적인 규범에 따라 컨설팅 금지 범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미국은 우리나라가 금지하고 있는 컨설팅을 포함해 △유가증권의 평가 △보험계리 △관리조직 및 인사 △회계감독위원회가 금지한 용역 등 컨설팅 금지 범위가 넓다. 국내 한 대형 회계법인의 대표도 "피감 기업에 대한 비감사서비스 제공에 제한을 두면, 감사 투명성도 높아지고 경쟁 완화로 저가 수수료 경쟁이 개선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기업도 회계 전문가를 채용해 회계에 대한 전문 지식을 키워야 한다. 강성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감사를 나가 보면 재무제표가 엉터리인 경우가 허다하다"며 "재무제표의 완결성이 높아지면 회계사들이 대신 작성할 이유도 없고, 시간을 가지고 제대로 감사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중된 감사 시기도 분산해야=감사 시기를 분산시키는 것도 투명한 회계 감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외감 대상 법인 2만 2,331개 중 95%가 12월 결산법인이었다. 강 회장은 "특정 시기에 과도하게 감사가 몰려 회계사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 감사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어 정부에 감사 시기를 분산하는 방안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감사투입시간과 인원 법제화를 통해 감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청년공인회계사회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감사인 의무교체제도의 재도입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일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4대 회계법인에서 기타 회계법인으로 감사인 교체 시 감사보수는 23% 줄어들고 감사 투입 시간도 10% 감소하는 등 오히려 갑을관계가 심화돼 투명한 회계 감사가 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도 "무조건적인 감사인 의무교체 도입보다는 감사인의 독립성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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