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저축은행 구조조정 발표 이후 금융감독원이 관리ㆍ감독을 제대로 못했다고 여론의 화살이 빗발칠 때였다. 당시 만난 금감원의 한 핵심 관계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권혁세 금감원장의 심기가 편치 않다고 넌지시 얘기를 꺼냈다. 조직이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임원들이 도통 움직이질 않는다는 것이었고 권 원장이 이 부분에 대해 섭섭해 한다는 얘기였다. 금감원에 대한 외부의 오해를 풀고 이해를 돕기 위해 임원 전부가 전방위로 뛰어도 모자란 데, 적어도 원장의 눈에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권 원장은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을 만나 의견을 듣고 현장에서 즉시 수렴해 정책화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축은행 문제가 터진 지난달에도 권 원장은 외부 인사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나 금감원의 입장을 밝히고 오해를 풀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느라 분주했다.
권 원장의 이러한 불만을 터뜨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저축은행 2차 구조조정 직후 금감원이 위기에 몰렸을 때도 임원들을 소집해 발 빠른 대응을 요구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났지만 금감원 간부들의 모습은 썩 변하지 않은 셈이다.
금융회사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절대 갑'으로만 행세해 온 금감원 임직원들에게 '을'의 자리에서 외부의 시각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일례로 외부에서 영입된 한 부원장보는 2년 이상 근무하면서 부하직원으로부터 대외 활동에 대한 조언을 거의 듣지를 못했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은행에서도 나타난다. 변화의 기치를 내걸고 조직의 혁신을 주장하는 김중수 총재는 취임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흡족하지 못한 모습이다. 흔히 한국은행을 절간이라고 표현한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끼리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퇴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튀는 행동이나 언사도 찾아볼 수 없다. '튀면 찍힌다'는 사실을 체득한 직원들은 묵묵히 제 일만 다하면 된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조직이 발전하려면 구성원들이 유연한 사고에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법. 하지만 중앙은행이라는 특수성과 업무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한은 임직원들은 뒤로 숨는 습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원들도 온통 총재의 입만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 총재도 가끔 임직원들의 이러한 행태에 갑갑함을 토로하기도 한다고 한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경쟁력을 갖춰야 외부에서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는데, '보신적 성향'때문에 한은 안에서만 승진에 목을 매달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에서는 한은이 '절대 갑'도 아닌, '절대 을'도 아닌 조직이라 변화와 경쟁에 둔감하다고 지적한다. 이제는 금감원과 한은이 변화에 적극적으로 마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