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3ㆍ11 대지진 이후의 일본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새롭게 결집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의 말이다. 아직 3ㆍ11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의 정확한 피해규모도 집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진 이후'를 예측하기가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조심스레 내다보자면 긍정적이라는 게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동안 일본은 고여 있는 호수 같은 나라였다. 20여년 동안 장기불황이 계속됐고, 국민의 교육수준과 시민의식에 비해 정치인들은 무능하기로 유명했다. 젊은이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프리터(Free+Arbeiter)'로 살아가면서 소비를 끌어내리는데 본의 아니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번 지진은 고여 있는 호수에 쓰나미를 일으킨 격이다. 이번 지진은 피해자 수나 피해재산 규모에서 지난 1995년 고베 대지진의 두세배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지진에 쓰나미, 원전폭발과 전력ㆍ생필품 부족까지 겹치면서 일본은 더 이상 이전의 일본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게 됐다. 우선 경제 측면에서 보면 고베 대지진 이후 복구 수요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반짝 돌아선 전례가 있다. 반면 재정적자를 감안할 때 과도한 지출로 경제가 더 휘청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정치적으로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여야갈등을 잊고 협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2005년 태풍 카트리나로 리더십 위기를 겪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처럼 맥없이 추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처럼 수많은 가능성이 교차되는 가운데, 분명한 것은 일본 내에서 '새로운 일본'을 꿈꾸는 목소리가 높아질 거라는 사실이다. 정계는 정쟁보다 민심에 초점을 맞출 계기와 무능한 정치인들을 솎아낼 계기를 얻게 됐다. 또 한 일본 금융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일본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해외로 나가 있는 돈, 일반 국민들이 쌓아둔 돈이 풀릴 것이다. 프리터들은 위기를 맞은 국가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기업은 전폭적인 지원과 신뢰를 보내며 일본이 일어서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저 소녀시대와 카라의 나라가 아니라 어려울 때 곁을 지켜준 나라로 기억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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