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지난해 7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발 금융위기로 미국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과 경제회생에 투입하기로 한 구제금융 규모는 무려 7조8,000억달러(뉴욕타임스 집계)에 이른다. 이는 미 국민총생산 14조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국민 1인당 2만3,000달러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액수다.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의 늪에 빠진 미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이 더 들지 추정조차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특히 지난 9월 리먼브러더스 붕괴 이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구제금융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미 최악의 위기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나서야 7,000억달러의 재무부 구제금융(TRAP) 계획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8,000억달러 모기지 시장 구제책 등이 나왔다. 위기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위기의 본질에 대한 처방전을 제시한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은 초기 정책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이처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국은 시장의 문제를 시장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시장주의와 자유방임론을 맹신함으로써 상황을 오판했고 정책 타이밍도 놓쳐 더 큰 화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미국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로 꼽히는 이번 위기를 피해갈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선제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사후 대응으로 일관하다 화를 키웠다. 일례로 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제안한 800억달러 규모의 ‘슈퍼펀드’ 구상을 들 수 있다. 서브프라임 관련 부실 자산을 월가의 공동 비용으로 털어내자는 이 구상은 이번 위기를 부른 뿌리를 직접 겨냥한 ‘정밀 타격’ 계획이었으나 월가의 미온적 반응과 정책 당국의 추진력 결여가 결합되면서 결국 무산됐다. 특히 이 계획은 미 의회가 우여곡절 끝에 승인한 7,000억달러 규모의 재무부 부실자산인수프로그램(TARP)과 흡사해 정책 타이밍 실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당시 1,000억달러를 약간 웃돌던 금융권 손실액은 1년이 지난 현재 1조달러에 육박한다. 슈퍼펀드 구상이 물거품이 되면서 월가는 거래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이른바 ‘카운터파트 리스크’가 증폭됐고 그 첫번째 희생양은 3월 붕괴한 베어스턴스였다. FRB는 그제서야 투자은행에 대한 유동성 지원 창구를 개설했다. 미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부실 사태 역시 전형적인 정책 오판으로 꼽힌다. 집값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자 올봄부터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으나 9월에서야 2,000억달러 구제금융이 결정됐다. 폴슨 장관은 구제금융 직전까지 “이들의 재무상태는 건전하다”고 강조했으나 중국 등 해외 투자가들의 채권회수 사태를 겪고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FRB 역시 마찬가지다. FRB는 지난해 11월 “그동안의 금리인하로 족하다”며 돌연 금리인하 기조를 접겠다고 시사했다가 이를 번복하기도 했다. 경기처방 역시 오판의 연속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폴슨 장관은 올 여름까지 “미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탄탄하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지만 경기침체는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것으로 판정 났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서브프라임 사태는 초기부터 선제적 대응을 했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비화되지 않고 미국만의 신용경색에 그칠 수 있었다”며 “미국의 정책 실기로 세계가 부담하는 대가는 너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