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참석했던 지난 20일 무역협회 송년의 밤 행사는 무거웠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무역 1조달러의 위업 달성을 자축하며 떠들썩했을 법도 했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문제 탓인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협회 측은 행사자체를 취소하려 했다가 환경미화원과 경비원 등 특별 초청객도 있고 해서 술과 음악은 금하는 정도로 행사를 치렀다고 설명했다.
이날 8시까지 짧게 진행된 행사에서 참석자들의 주요화제는 단연 김 위원장의 사망 문제였다. 혹은 "우리 정부가 정말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몰랐을까"라고 말했고 "정부보다 삼성이 사망 사실을 먼저 안 것이 사실이냐"는 말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대체로 정부 정보력에 대해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왠지 삼성이라면 사망 사실을 정부보다 빨리 알았을 것만 같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아무리 삼성 측에서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도 정부보다 삼성의 정보력이 더 높게 평가 받는 것은 그만큼 정부의 허술한 시스템과 정보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정부의 정보력을 신뢰하지 못하다 보니 주요 대기업들은 중국 법인 및 지사를 통해 김 위원장 사후 정세 등의 정보를 수집하느라 여념이 없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될 경우 사업에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기업 입장에서 정보력에 무능한 정부만 믿고 있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민간의 노력을 돕지는 못할망정 눈치를 주고 있다. 삼성, LG 등 주요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북한 관련 정보 수집 등으로 자사가 언급되는 것 자체를 꺼리며 입을 닫기 일쑤다.
기업들의 눈치보기는 정부가 요즘 동반성장과 공정한 사회 등을 명분으로 기업에 대해 날을 세우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데 기업의 대북정보 수집에서도 그런 눈치보기가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국민과 기업이 신뢰할 수 없게끔 만든 정부, 그런 정부가 무서워 눈치보기 급급한 재계,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정부와 재계의 슬픈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