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금주법과 '유사 김영란법'


상처의 아픔은 점차 잊혀지지만 흉터는 가끔씩 그때의 통증을 기억나게 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70일이 지났다. 대통령이 국가개조론까지 들고 나왔지만 사고 이후 사람들의 가치관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 외에 뇌리에 남은 상흔들이 기억하는 변화는 거의 없다. 사회 안전·방재 시스템 개혁, 관피아·적폐 척결의 외침이 아득하게 들리는 것은 월드컵이 주는 '망각의 선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권은 세월호 특별법이나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 등 민심의 방향과는 멀찍이 떨어져 갈지자 걸음을 걷고 있다.


김영란법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아쉬움을 넘어 답답함으로 치닫는다. 정부초안이 만들어진 후 5년, 국회에서만 2년 동안 묶인 해묵은 법안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빛을 볼 것이란 기대가 컸다. 아니 기대감만 컸다. 19대 전반기 국회에서 불발된 법안은 후반기로 떠넘겨져 재론조차 기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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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의 압박에 못 이겨 무늬만 김영란법이 나올 수도 있다. 이는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적용 대상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본래 의도를 왜곡시키거나 재판에서 밝히기 어려운 대가성, 직무 관련성 입증 조항을 넣어 솜방망이로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법 원안에는 대가성,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공직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세월호 참사의 한 원인도 이 같은 부정부패 고리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법 제정은 필연적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직업선택 등 기본권을 지나치게 옭아매는 법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사문화될 수 있다는 논리는 법 제정시 적용 대상이 되는 일부 국회의원·관료들에 의해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지난 1920년부터 14년 동안 미국 사회의 최대 논쟁거리였던 금주법과 비교되기도 한다. 당시 금주법은 국민의 음주 욕구에 대한 완전 통제가 불가능한 점을 간과했고 법 집행 시스템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감시요원은 턱없이 모자라 적발은 꿈도 못 꿨고 관리들은 밀주업자들의 표적이 됐다.

그러나 확실한 차이가 있다. 금주법은 전 국민에게 맞서는 법이었고 김영란법은 일부 부패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살짝 봐주거나 처벌 수위를 낮추자는 식의 '유사 김영란법'이 만들어진다면 그 법은 사문화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법 적용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신종 부정부패 트릭도 완성될 것이다. 시간은 상처 입는 국민들 편에 있지 않다.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여론독자부 박현욱 차장 h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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