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서재형 대신자산운용 대표

투자도 인문학 지식 쌓아야 성공 길 보여요<br>행장 꿈꾸던 평범한 은행원 늦깎이로 펀드매니저 변신<br>'디스커버리' 대박 터뜨리며 국내 펀드 전성기 이끌어<br>운용사 본연 임무에 충실… 고객 이익 내도록 힘쓸 것



지난 2000년대 중반 국내 펀드시장은 그야말로 황금기를 보냈다. 지금이야 펀드시장이 죽었다고 하지만 불과 6~7년 전 재테크 수요와 세제혜택이 맞물려 펀드가입 열풍이 금융시장을 뒤덮었다. 은행에서 펀드에 가입하려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었다. 재테크에 관심 있는 웬만한 사람들은 '인사이트' '디스커버리' 같은 펀드 이름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국내 펀드시장의 전성기를 말할 때 서재형(48ㆍ사진) 대신자산운용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2004~2007년 미래에셋운용에 몸담았을 시절 디스커버리 등의 펀드를 운용했던 그는 경이로운 수익률로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으며 국내 펀드시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래에셋운용 퇴사 이후 2010년 창의투자자문을 설립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던 서 대표는 올해 4월 대신자산운용 대표에 취임해 운용업계로 돌아왔다.


"대신자산운용으로 오고 나니 정말 행복합니다. 투자자문사에 있을 때는 주가가 오르기만을 기다리느라 힘들었는데 이곳에서는 퀀트(금융공학)ㆍ롱쇼트 등 여러 전략을 활용해 펀드를 운용할 수 있거든요. 고객에게 다양한 투자수단을 제시할 수 있다면 운용사 대표로서 가장 보람되지 않을까요"

자문사 대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는데 운용업계로 돌아와 기쁘다고 서 대표는 현재 기분을 설명했다.

스타 펀드매니저 서 대표가 걸어온 인생여정은 파란만장하다. 서 대표의 첫 직장은 펀드 운용과 다소 거리가 먼 국민은행이었다. 은행에 들어가 행장 등 고위직을 꿈꿨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은행들의 합종연횡을 지켜보면서 염증을 느꼈다. 때마침 국민은행에서 유가증권 전문인력을 공모하자 과감히 손을 들었다.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주식을 사고 파는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다.

펀드로 국민은행의 고유자금을 운용한 것은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국민은행 자금운용부에서 코스피펀드를 운용하면서 연 30%에 달하는 수익률로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명성으로 2004년 국내 펀드시장의 최강자로 급부상한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긴다.

미래에셋운용 시절은 서 대표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그가 운용했던 '솔로몬3억만들기'는 공모펀드 최초로 설정액 1조원을 돌파했고 디스커버리 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무려 1,000%에 달했다. 전성기 때 그가 주무르던 금액만도 10조원에 이른다. 그는 "펀드매니저로서 명성을 안겨줬던 미래에셋운용 시절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디스커버리 펀드를 맡았을 당시의 수익률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는데 스스로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펀드매니저로 승승장구하던 서 대표는 미래에셋 퇴사 이후 2010년 창의투자자문을 설립, 자문업계에 발을 디디며 업계에 또 한번 충격을 던진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자문사 설립인가를 받은 시절은 코스피가 정점을 찍은 때였다. 서 대표의 네임브랜드에 힘입어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모았지만 사놓은 주식이 오르지 않았다.

그는 "자문사는 운용제약으로 롱온리(Long Onlyㆍ매수일변도) 전략밖에 쓸 수 없어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주식시장을 좋게 보지 않는 매니저가 쇼트(shortㆍ매도)를 할 수 없는 것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2012년 말 대신자산운용과 창의투자자문의 합병에 동의하고 올해 4월 대신자산운용 대표직을 맡았다. 돌고 돌아 친정인 운용업계에 다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대신운용 대표에서 오르면서 그는 '돈을 모으는 것보다 고객이 돈을 버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미래에셋운용이 돈을 많이 끌어모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어떤 시장상황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가 취임한 후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 공모형 롱쇼트펀드를 중점적으로 출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그는 "2000년대 중반은 국내 증시가 탄력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롱온리 전략이 주효했다"며 "현재는 저성장 국면으로 국내 증시가 1,800~2,100의 박스권에 갇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져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을 출시해 고객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앞으로 주가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대신운용 매니저들에게 단번에 수익을 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매니저들에게 한달에 0.5%의 수익만 꾸준히 올리라고 말한다. 한 매니저는 한달에 1.7%의 수익을 내 야단을 치기도 했다. 그는 "마이너스 수익률은 피하는 대신 한달에 0.5%씩 꾸준히 수익을 올리면 시중금리를 웃도는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성과가 쌓이면 은행 성향의 보수적 고객이 믿음을 갖고 펀드에 자금을 맡길 것"이라고 전했다.

다소 비관적인 증시전망을 내놓은 서 대표가 그럼에도 주목하는 업종이 있을까. 서 대표는 3D프린터 업종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리 입력한 설계도에 따라 3차원의 물품을 찍어내는 기계가 활성화되면 3D프린터 관련주들이 큰 관심을 받을 것"이라며 "정보기술(IT)ㆍ자동차를 빼면 큰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중소형 업종이 국내 증시에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신자산운용이 국내 운용사 최초로 중소기업 전용 시장 코넥스(KONEX)에 투자하는 '창조성장중소형주' 펀드를 출시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서 대표는 펀드 운용과 투자에 있어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얄팍한 경제학적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창의투자자문 대표 시절 서 대표는 주식투자를 준비하던 청송교도소 수감원으로부터 어떤 책을 봐야 할지 추천해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서 대표가 권유한 책은 다름아닌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였다. 그는 "최근 일부 그리스 투자자들이 돈을 많이 벌었던 것은 1945년 이후 경제적 이유로 부도를 낸 나라가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펀드 운용이나 투자에서 인문학적 고찰과 지식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0년 전 중국 고전에서도 펀드매니저의 자세를 찾는다. 도덕경의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가 바로 그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며 그러면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많은 운용사들이 만족을 모르고 고점에 주식을 사들였다가 손해를 본 사례가 많다"며 "어느 정도 수익을 내면 고객에게 환매를 권유하고 다시 때를 기다렸다 재투자하게 해야 운용사와 투자자들이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 취임 이후 기관투자가들과의 미팅과 펀드 운용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는 아시아로 시장을 넓힐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현재 홍콩 현지 매니저와 접촉해 아시아 주식을 대상으로 롱쇼트 전략을 추구하는 한국형 헤지펀드 출시를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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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업 본질로 돌아가 고객 이익만 생각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운용할 것입니다."

한때 펀드매니저로 정점에 올랐던 그가 이제는 대신자산운용 대표로서 또 다른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 서재형 대표는

▲1965년 안동 ▲연세대 경영학과 ▲1990년 국민은행 입사 ▲2000년 국민은행 증권운용팀 과장ㆍ차장 ▲2004년 미래에셋투신운용 주식운용1본부장 이사 ▲2006년 3월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1ㆍ2ㆍ3본부장 상무ㆍ전무 ▲2008년 12월 미래에셋자산운용 리서치본부장 전무 ▲2010년 9월 한국창의투자자문 대표이사 ▲2013년 4월~ 대신자산운용 대표이사








펀드수탁액 2조3000억으로 급증… '중위험·중수익 상품 명가' 날갯짓

■ 존재감 드러내는 대신자산운용

한동훈기자

서재형 대표가 취임하기 전 대신자산운용은 운용업계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지난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펀드매니저 횡령사건으로 사모 특별자산펀드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뒤 크고 작은 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고객의 신뢰가 떨어지면서 최근 몇년간 투자자에게 판매할 변변한 공모펀드 하나 출시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 대표는 올해 4월 대신자산운용의 수장을 맡았다. 서 대표는 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우선 우수인력을 유치하는 데 큰 공을 들였다. 창의투자자문 대표 시절에 같이 일했던 매니저를 데려오는 것은 물론 취임 이후 1년도 채 안 돼 신규 인력 32명을 채용했다. 인재풀이 늘어나야 운용사도 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신자산운용의 인력은 서 대표 취임 전 32명에서 현재 62명으로 증가했다.

인력이 늘면서 사무실도 확장했다. 이전에는 대신자산운용과 대신경제연구소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대신증권 본사 빌딩 5층을 나눠 썼지만 현재는 대신자산운용이 5층 전체를 사용한다.

서 대표는 대신자산운용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종이 사용량을 제시했다.

그는 "예전에는 A4용지 사용량이 많지 많았는데 지금은 매니저들이 펀드제안서, 펀드출시 계획서 등을 많이 작성하면서 종이 사용량이 늘었다"고 전했다.

서 대표 취임 이후 대신운용의 펀드수탁액도 '창조경제성장주' 등 공모펀드와 한국형 헤지펀드 론칭으로 1년 전 1조5,000억원에서 현재 2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서 대표는 앞으로 대신운용이 중위험ㆍ중수익 상품의 명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신금융그룹 오너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마음껏 경영을 펼치고 있다"며 "앞으로 정기예금 금리의 2배를 추구하는 중위험ㆍ중수익 상품 위주로 라인업을 정비해 30조원까지 운용규모를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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