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뇌연구 개발사업은 획기적 전기/이수영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기고)

과학기술처가 「뇌연구개발기본계획(Braintech 21)」을 발표한 97년 9월30일은 한국 과학기술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기술에서 선진국에 뒤지고, 임금 경쟁력에서 개발도상국에 뒤져 사면초가에 빠져 있는 한국의 산업경쟁력을 일거에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인간 두뇌와 유사한 지능형 기계」기술은 21세기 산업 및 사회의 공통핵심기술로 산업혁명, 컴퓨터혁명에 이은 제3의 혁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컴퓨터가 없는 오늘을 생각할 수 없듯이 컴퓨터 비서, 자동운전 시스템, 컴퓨터 가정교사, 가사 로봇 등 지능형 기계가 없이는 21세기의 단 하루도 있을 수 없다. 또 치매 등 뇌질환은 21세기 고령화 사회의 인류복지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인간기능 기계의 지원을 받으며 정신질환없이 자유롭게 사는 인류, 이것이 21세기 인류 사회의 미래상이자 뇌연구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뇌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의 경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한국은 미국·일본에 비해 연구인력이 부족하며 이번 과기처 기본계획의 연간 연구비 규모도 일본의 20∼25%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연구규모는 성공의 한 요소일 뿐 전부가 아니다. 옛사람들은 「천시」와 「지리」,「인화」를 성공을 위한 3대 요소로 꼽았다. 「천시」란 하늘이 정해준 때, 즉 시기의 적절함이다. 뇌연구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90년대초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어 세계적으로도 아직 초창기에 있으나 최근의 연구 추세와 올해부터 시작되는 대규모 연구과제를 고려할 때 수년이내에 급속한 성장기를 맞을 것으로 예측된다. 뇌는 매우 복잡하지만 그 기능의 일부만을 이해하고 응용하여도 실세계에 매우 높은 효과가 있다. 현재에도 적응학습에 기반한 뇌정보처리기법은 음성인식, 문자인식, 주가예측 등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내외 격차가 적으며 국제 학술교류가 자유로운 지금이 바로 뇌연구의 「천시」이다. 「지리」란 전쟁터에서의 지형적 이점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선택된 연구기획의 주요분야가 우리에게 얼마나 적합한가를 의미한다. 90년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무역수지 개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으나 반도체 메모리(D램)에만 의존하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메모리는 1개의 트랜지스터와 1개의 캐퍼시터로 구성되는 기본 단위를 수억개 반복하는 구조로서 최고의 제조공정기술을 갖고 있으나 설계기술이 취약한 한국반도체산업에 매우 적합한 특성을 갖고 있다. 뇌신경세포의 기능은 비교적 단순하나 무수히 많은 신경세포가 상호연결됨으로써 인간지능을 구현한다. 뇌기능 구현의 핵심이 되는 신경회로망칩(Neuro Chip)도 뇌신경세포에 해당하는 비교적 단순한 기본단위를 대규모로 반복해 설계하게 된다. 따라서 설계기술의 취약점이 문제시되지 않으며 공정기술의 이점을 살릴 수 있다. 여기에 뇌연구의 「지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화」란 사람들의 능력과 협력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의 뇌연구인력이 양적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분야별로는 세계 선두그룹에 근접한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외국에 있는 젊은 연구인력을 흡수하고 국내에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학문이 융화되어야 하는 뇌연구에는 폭넓은 학문적 기반과 안목을 갖춘 시스템적 접근방법의 연구자들이 필요한데 한국의 연구자중에는 이러한 소양을 갖춘 인력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학문적 세분화가 심한 사회에서는 매우 어려운 조건이다. 또 한국인은 공동체 개념이 커서 공동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인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뇌연구의 인화 조건을 만족한다. 뇌연구는 매우 시기 적절하며 한국사회에 적합한 연구 분야이다. 이번 과기처 기본계획과 같은 정확한 방향제시가 있고 범부처적 추진체계와 지속적인 지원이 따른다면 2007년까지 미국·일본 수준의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이는 오늘을 사는 한국 과학기술인의 사명이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약력 ▲52년 10월 대구 출생 ▲서울대 전자공학과 ▲미국 뉴욕폴리테크닉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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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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