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을 신체에 비유하면 피다. 금융을 기반으로 실물(산업)이 발전하고 나라가 커진다. 이런 금융을 좀먹는 치명적인 독이 있다. 바로 '정치논리'다. 흔히 말하는 포퓰리즘이지만 이를 부추기는 게 또 있다. 예금자와 금융회사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다.
그런데 지금 금융산업 주변에는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이것이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정치와 금융회사가 한꺼번에 정치색에 전염되는 순간 금융의 선진화는 요원하다.
이달 들어 전국을 뒤흔들었던 정치권의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최대 2억원 보상안은 금융산업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었다. 부산 표심을 생각한 정치권이 앞다퉈 1인당 예금보호한도인 5,000만원 이상 예금자에게도 최대 2억원까지 보상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1인당 6,000만원으로 후퇴했다가 결국 없었던 일로 됐지만 이런 상황이 전개됐다는 것 자체가 우리 금융산업의 후진성을 보여준다.
우리금융지주의 국민주 방식 민영화는 또 하나의 포퓰리즘이다. 국민주 방식은 큰 취지에서는 분명 나쁘지 않다. 이를 통해 성공한 해외 사례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을 통해 등장한 국민주 방식은 우리금융 정상화를 위한 정교한 그림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없다. 표를 얻기 위한 속셈이 다분했다.
법적 금리상한선의 급격한 인하도 포퓰리즘 사례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지속적으로 연 39%인 대출금리 상한선을 30%대까지 끌어내리려고 한다.
물론 당장 보기에는 서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당장 부작용이 적지 않다. 대부업체들이 대출을 줄이거나 사채시장으로 다시 숨어들어가 은행 등을 이용하지 못 하는 이들은 돈을 빌릴 곳이 없어진다.
대출 최고금리가 연 39%로 떨어진 6월27일을 기준으로 3개월 전후 기간에 대부업체 수가 무려 703개나 줄어들었다. 대부업체마저 줄어들면 서민들은 사채를 쓸 수밖에 없다.
정도가 지나친 금융정책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 금융의 기본원칙을 지켜가는 데도 걸림돌이다. 이를 부추기는 것이 바로 금융을 이용하는 정치집단이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서울보증보험의 특별채무탕감 계획을 문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보증보험의 계획처럼 장기 채무자 19만여명에게 대출 원리금 3,000억원을 깎아주게 되면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채무는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금융의 근본원칙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고 "오래 버티기만 하면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선임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산업에 원칙이 없다 보니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금융 분야에도 넘쳐나고 있다"며 "위기를 구한다면 달콤함으로 다가온 포퓰리즘이야말로 위기를 악화하는 주범"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