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정부의 R&D는 'Retard & Delay'?

“큰 스케치만 있지 알맹이가 없다.” ‘국가 R&D사업 토털 로드맵’이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통과한 21일 과학계 한 인사의 평가다. 이 로드맵은 우리 정부 최초의 ‘R&D 포트폴리오’다. 앞으로 키워야 할 것과 아닌 것을 선별, 유망 분야를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 기본 방향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투자규모나 재원조달 방안, 중점투자 기간 등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지 않자 상당수 과학계 인사들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기술강국인 독일이 이미 ‘독일 하이테크 전략’을, 일본이 ‘제3기 과학기술기본계획’ 등을 발표하면서 생명공학ㆍ정보통신ㆍ에너지 분야에 대한 중점 투자를 선언하고 나선 마당에 우리도 보다 확실한 목표와 투자계획을 밝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과학기술 투자는 ‘뒷북’ 수준을 면하지 못했다. 이는 통합적 관리와 전략적 투자의 부재가 결정적 요인이다. R&D 투자를 총괄하는 구심점 없이 각 부처별로 관련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다른 분야와의 시너지 효과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또 백화점식 투자행태도 문제이다. 지난 80년대 우리나라의 산업별 R&D 투자를 보면 정부와 민간 모두 ‘정보ㆍ전자’ 분야에 그야말로 ‘올인’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강국은 사실 20여년 전에 이미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현명한 정부라면 기업들이 집중적인 투자를 이미 진행하고 있는 분야보다는 향후 성장동력을 확충할 수 있는 신분야를 발굴, 육성하는 게 옳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행태도 ‘역주행’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세계 각국이 격전을 치르고 있는 생명공학(BT) 분야만 하더라도 2004년 정부 전체 R&D 투자액의 24.9%가 BT 분야에 투입됐지만 2005년에는 그 비중이 23.7%로 오히려 감소했다. 에너지 분야 투자 역시 12.7%에서 9.8%로 무려 2.9%포인트나 줄었다. BT에 종사하는 한 과학자는 정부의 ‘R&D’는 사실상 ‘지체ㆍ지연’(Retard & Delay)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선진국처럼 과학기술 분야 육성에 천문학적 재원을 투입하기 어렵다. 한정된 자원으로 경쟁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한 발 앞선 예측과 적재적소의 재원투입 역량이 필요하다. R&D 로드맵을 다시 한번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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