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한중일 바둑 영웅전] 기상천외의 발상

제8보(122∼140)



백22로 끊은 것은 진작부터 검토실에서 예상했던 수순이다. 흑은 23으로 단수치고 25로 잡을 수밖에 없다. 백은 상대적으로 중앙 백대마가 두터워져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이젠 중원의 엷은 흑돌들을 슬슬 추궁하면서 굳히기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구리의 백26은 굳히기의 시작이었다. "백이 무난하게 승점을 기록할 것 같은 분위기예요. 고수의 바둑에서는 이런 상황이 되면 역전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김만수) 이세돌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아주 특별한 묘방이 아니고는 역전이 안된다는 판단을 한 이세돌은 여기서 10분을 고심하다가 기상천외의 발상을 보여준다. 흑29로 움직인 이 수. "뭐지? 왜 송장이 꿈틀거리지?"(필자) "기묘하군요. 하지만 천하의 이세돌이 타이틀매치에서 둔 거니까 뭔가 깊은 뜻이 있을 겁니다."(김만수) 구리도 어안이벙벙했는지 5분을 생각하더니 백30으로 단단하게 연결했다. 이세돌은 흑31, 33으로 계속 움직였다. 구리는 이게 웬 떡이냐 하듯이 백32 이하 36으로 최대한 받아먹고 본다. 이세돌이 얻어낸 것은 흑37을 연결하여 약간의 두터움을 마련한 것뿐인데 그 두터움의 위력으로 중앙 백대마를 추궁할 궁리를 한 것이다. "고육책이군요. 하지만 백이 좌변에서 5집쯤 실리의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백이 여전히 좋아요."(김만수) 아주 미련해 보인 이세돌의 이 작전이 결과적으로 역전승의 계기가 된다. 사실은 백30으로 참고도의 백1 이하 11까지로 좌변의 흑을 살려주고 백13으로 중앙 흑대마 전체를 잡으러 갔더라면 흑대마가 모두 잡혔을 것이다. 이세돌은 낙관하고 있는 구리가 이렇게는 못 둘 것이라고 믿고 일종의 배짱 테스트를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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