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궤도 이탈한 상호금융] <중>정체성 잃은 농ㆍ수협

"농민 위한다면서…" 도심서 이자장사<br>농민 없는 서울 강남 지역 농협 PB등 8개 지점 운영<br>농업 자금 대출도 '쥐꼬리' 조합선거는 비리로 얼룩

고급 마감재와 조명으로 최근 인테리어를 새로 한 서인천농협 청라지점 모습. 상호금융기관이지만 시중은행 이상으로 잘 꾸며져 있다.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인근에는 영동농협 압구정 지점이 있다. 농민만 가입할 수 있는 단위 조합이지만 압구정ㆍ개포ㆍ대치 등 강남에만 8개의 지점이 있다. 물론 농민이 거래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농민이 예금하러 서울 한복판까지 올라 올 리 없다. 실제 영동농협은 조합원은 792명이지만 준조합원이 3만7,435명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여신은 8,332억원이지만 농업 관련 정책자금 대출은 11억원에 불과하다. 압구정 지점은 올 들어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 못지않게 내부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꾸몄다. 금융감독 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서울에만도 자산이 1조원이 넘는 단위 농협이 여러 개 있다"며 "서울 등 대도시에는 더 이상 농민이 없는데도 비조합원 거래만 늘리면서 농민끼리 서로 돕는다는 상호 유대 정신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대도시 조합의 경우 더 이상 상호금융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자 장사에만 몰두하고 조합선거에 매달리는 등 설립 목적을 잃어버리고 있다. ◇농민 상태 단위 농협…실상은 예대마진 따먹기 주력=단위 농협은 지난 2009년 말 기준으로 조합 수 1,178개에 자산이 222조원에 달하는 거대 조직이다. 예금만해도 178조원에 이른다. 대형 시중은행 못지않은 몸집을 자랑한다. 물론 농민을 위해 세워진 조직이다. 하지만 실상은 농민은 물론 일반 대출자들을 상대로 이자 장사에 주력한다. 2008년 1.58%포인트에 그쳤던 농협의 예대금리차이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009년에는 2.73%포인트까지 뛰었다. 지난해에도 2.43%포인트에 달한다. 예금금리는 가급적 높게 주고 대출 이자는 적게 받겠다는 게 상호금융회사의 설립취지인데 어려울 때 오히려 높은 대출금리를 적용한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에게는 더 높은 금리를 매기기도 했다. 3월 공개된 감사원의 '서민금융 지원시스템 운영 및 감독실태' 보고서를 보면 단위 농협들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연체이자를 부당 징수하는 방법으로 168억4,700만원을 추가로 거둬들였다. 단위 농협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금감원 제재는 단골=단위 농협ㆍ수협 등은 금융감독원의 단골 제재 대상이다. 동일인 대출한도 초과 등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귀포농협은 이달 초 동일인대출 한도를 19억원 초과해 임직원이 주의적 경고와 견책 등을 받았다. 대전원예농협과 울산수산업협동조합ㆍ부산연초농업협동조합도 대출한도를 넘어서까지 돈을 빌려줬다가 올 들어 금감원의 제재를 받았다. 금융권의 관계자는 "농ㆍ수협 등의 경우 임직원이 자신과 잘 아는 이들에게 한도를 넘어서까지 대출을 해주는 경우라 적지 않다"며 "조합원들을 위한다는 의미가 많이 퇴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비리 복마전=단위 농협의 수장인 조합장 선거는 복마전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매번 선거 때마다 금품이나 향응 제공 등으로 문제가 되곤 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조합장 선거 때도 경북 봉화에서는 조합장 예비 후보가 7,000만원의 돈을 뿌렸고 강릉에서는 상대 후보자를 총으로 위협하는 사례도 있었다. 감독 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조합장에 당선되면 지역 유력인사가 되고 정치적인 힘도 갖게 된다"며 "농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을 자신의 입맛에 따라 이용하는 것으로 농협이 하루 속히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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