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노사공생의 길 찾자/선한승 노동연 연구조정실장(기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노동시장에 찬바람이 불고있다. 전직원의 50%를 감원하겠다고 발표한 기업이 있는가하면 10∼30%의 감원은 이제 일상화돼 버렸다.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이름의 감원선풍은 노동법개정 이후 예견돼 왔다. 그러나 이제는 IMF가 이를 뒷받침하는 형국이다. 우리 기업은 그동안 양적인 성장에 치우쳐 왔다. 그결과 광범위한 과잉인력을 보유케 됐다. 미국의 기업이 80년대 대량감원을 의미하는 「다운사이징」을 실시한 것은 과거 팽창주의 시대의 유산을 정리한 것이었다. 미국의 11월 실업률이 73년 10월이후 가장 낮은 4.6%를 기록했다. 이에 대한 요인이 1980년대 대량감원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79년 이후 감원된 4천3백만명의 근로자는 미국 전체 인구 2억1천만명을 4인가족으로 치면 거의 모든 세대에서 한사람이 해고를 당했다는 계산이다. 미국이 대량해고를 감행했는데도 실업률이 낮아진데는 우리나라와 다른 몇가지 조건이 마련돼 있다. 먼저 미국은 세계 최첨단 기술수준을 바탕으로 모험산업을 통해 양질의 고용창출을 이루어냈다. 클린턴 제1기 임기 동안 8백만명의 근로자들이 해고됐지만 1천1백만개의 새로운 고소득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는 첨단 기술수준 때문에 가능했다. 또 미국 기업의 고용조정은 경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감행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코넬대학의 베트교수는 「경영자의지 독트린」으로 부른다. 일본은 엄격한 법제도에 의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강력한 노동조합의 반대 때문에 대량감원이 어렵지만 미국은 이러한 제약조건이 없거나 아주 약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대통령 후보들이 모험기업의 육성으로 고용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처럼 높은 고용창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는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노동조합을 가지고 있다. IMF사태 이후 대량 부도사태가 예견되는 가운데 내년도 고용사정이 최악으로 치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과 같이 무차별 감원풍조가 확산될 경우 내년도 노사관계는 극히 불투명하다. 금융위기로 촉발된 기업부도 속에서도 한가닥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수출산업의 경기호조다. 그런데 노사관계 불안에 의해 수출경기마저 쇠퇴의 길을 걸으면 그야말로 우리 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미국의 고용관행을 섣불리 모방, 너도나도 대량감원으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 노동부가 작성한 지난 15년간의 고용조정조망이라는 비밀보고서는 다운사이징에 대한 효과에 부정적이다. 오히려 고용조정에 의해서 노동자의 사기저하, 직업병 속출, 작업능률 하락 등 여러가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경영자협회(AMA)가 94년에 대량감원을 단행했던 기업을 대상으로 파급효과를 조사한 결과 생산성이 저하됐다는 응답이 30%, 종업원의 사기가 저하됐다는 기업은 86%에 달했다. 현단계에서 우리나라의 고용문제를 해결하려는 지혜는 독일의 폴크스바겐 자동차공장 협약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독일 통일이후 어려워진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의 노와 사는 「모두 같이 사는 길」을 모색했다. 감원대신 근로자는 고용안정을 위해 20%라는 임금삭감을 받아들였고 사용자는 주당 근로시간을 28.5시간으로 단축했다. 이를 통해 근로자는 고용안정을 확보했고 사측은 노동비용을 절감, 노와 사가 모두 승리하는 윈­윈(Win­Win)전략을 구사했다. 지금 기업들이 해고의 희생양으로 삼고있는 임원들은 70년대 입사해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루어냈던 주역들이다. 이들의 출중한 경험은 아직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중히 활용할 분야가 많이 남아있다. 무모하게 이들의 일자리를 뺏기보다는 한번쯤 진지하게 기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감봉과 해고중 어느 길을 택하겠는지 물어봐야 한다. 우리기업이 부도상황으로 몰리면서도 잃지 말아야 할 자세는 폴크스바겐 공장협약과 같은 교환논리에 바탕을 둔 공존공생의 「사회적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약력 ▲전남 보성 출생 ▲고려대 사회학과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박사 ▲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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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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