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7일] 사상최대의 해상약탈


[오늘의 경제소사/9월7일] 사상최대의 해상약탈 권홍우 매복 중인 영국 함대의 견시수가 외쳤다. ‘큰 배다!’ 스페인 보물선을 약탈하려고 대서양을 찾아 나선 지 두달. 기대했던 스페인 선박 대신 걸려든 포르투갈 배는 영국의 최대 함선보다 3배나 컸다. 발견 후 추적까지 3일, 전투 개시 두 시간 만에 포르투갈의 1,600톤급 갤리온선 ‘마드레 데 디오스호’는 백기를 올렸다. 대포 32문을 보유했지만 작고 빠른 영국 군함 6척의 벌떼 공격에 무너진 것. 아조레스 제도 부근에서 발생한 약탈의 시기는 추정만 남아 있다. 1592년 8월 초로 알려졌을 뿐이다. 확실한 날짜는 그해 9월7일. 영국 함대가 의기양양하게 다트머스항으로 돌아온 날이다. 구경꾼들은 디오스호의 크기에 놀랐다. 더욱 놀란 것은 화물. 금과 은, 진주ㆍ다이아몬드ㆍ호박 같은 보물은 물론 후추 450톤과 정향 45톤, 계피 35톤 등 값비싼 향료와 중국산 비단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노획물의 총가치는 50만파운드. 단일 해상약탈로는 전무후무한 규모다. 당시 영국 재정의 절반을 넘는 횡재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입이 귀밑에 걸렸다. 35만파운드가 국고에 귀속되고 15만파운드는 여왕과 선장ㆍ선원의 몫으로 돌아갔다. 보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영국에서 다이아몬드 세공사라는 직업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라고 전해진다. 포르투갈이 항의했지만 영국은 꿈쩍도 안 했다. 평상시에는 해적질을 하고 전시에는 정규 해군으로 싸우는 게 후발주자 영국의 해양전략이었으니까. 해적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인도의 값진 물건을 실은 디오스호의 약탈로 재미를 본 영국은 아예 동양 무역에 직접 나서기로 작심, 1600년 동인도회사 설립으로 이어진다. 시장 날치기가 장물로 부를 축적해 독점적 도매상으로 자리잡고 자본주의의 꽃을 피운 셈이다. 입력시간 : 2006/09/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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