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야생으로 돌아간 방송계

초식동물들은 맹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무리 지어 다닌다. 이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줄지어 움직이면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쾌속으로 달려드는 맹수도 섯불리 어쩌지 못한다.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야생의 본능이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본능에는 야생의 그것이 숨을 쉬고 있다. 극한 경쟁사회에 정글의 법칙을 비유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재전송관련 유료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방송계에 약육강식의 야생 본능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14일 MBC는 KT스카이라이프 수도권 62만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HD(고화질) 방송신호의 공급중단에 이어 18일부터는 방송 전면 중단을 단행하겠다고 하자 다급해진 KT스카이라이프는 17일 MBC측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며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나 MBC는 만족할 만한 협상을 도출해내지 못했다며 방송 중단의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방통위가 중재에 나서 양측은 이틀간의 숙려기간에 들어갔다. 지상파 방송계와 유료방송계의 재전송 관련 분쟁은 해묵은 갈등이다. 지난해 10월 지상파방송 3사는 5대 케이블방송사(MSO)가 자신들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재전송한다며 저작권료를 지불 않으면 방송을 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당시 5대 MSO는 '지난 15년간 난시청 해소를 통한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해 온 케이블방송계의 수고는 간과한 채 지상파가 무리하게 콘텐츠를 강매하는 만큼 더 이상 지상파 방송을 송출하기 어렵겠다'면서 방송 중단을 결의하는 등 초강수로 맞섰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로 갈등은 수면아래로 내려갔지만 현재 저작권 위반 소송 중이다. 지상파방송사들이 한발 물러선 데는 방통위가 주장하는 전체시청가구 중 90%라는 보편적 시청권이 케이블TV업계 없이는 불가능한 수치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케이블업계가 지상파 방송을 중단하면 쏠리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감수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KT스카이라이프는 2008년 MBC와 가입가구당 재전송비 유료화(CPS) 계약을 체결해 더 이상 지불을 늦출 수가 없게 됐다. MBC는 KT스카이라이프와 유리한 조건으로 유료화를 성사시켜야 후일 케이블업계와 진행하는 소송도 승산이 있기 때문에 강경하게 나오는 것으로 비춰진다. 지상파 방송계는 정부의 든든한 뒷받침과 전파라는 공공재를 기반으로 한 시장 지배적 사업자다. 공영방송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경쟁이 아름다우려면 공정한 법과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 시장이 힘의 논리로만 움직인다면 경쟁이란 가진 자의 욕망 채우기에 불과하다. 유료방송계를 압박하는 지상파 방송사는 공영 방송의 책무를 먼저 환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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