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연쇄살인 수사공조 '허술' 인명피해만 늘어

'경찰 수사체계 개선' 불가피…'廳단위 전담부서 필요' 지적

10개월간 20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유영철(34)씨 검거를 계기로 경찰 수사체계에 대한 개선 논의가 불가피하게 됐다. 경찰은 막대한 수사인력을 투입하고도 지난해 9월부터 2개월간 발생한 4차례의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사건을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10여명의 무고한 여성들의 추가 희생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사건 초기 `동일범 가능성'을 간파하지 못해 긴밀한 공조수사를 펼치지못한 게 화근이 돼 인명피해를 더욱 늘렸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 `때늦은' 공조수사 = 경찰이 지난해 9월 강남구 신사동을 시작으로 구기동,삼성동, 혜화동에서 잇따라 발생한 부유층 노파 연쇄살인 사건을 동일범 소행으로 확신한 것은 그해 11월18일 혜화동 사건 이후였다. 4차례에 걸친 살인행각으로 8명이 목숨을 잃을 때까지 각 관할 경찰서가 제각각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유씨는 서울 전역을 누비며 범행 대상을 물색할 수 있었다. 경찰은 당초 9월24일의 신사동 사건과 보름 후의 구기동 사건을 별개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구기동 사건이 둔기만 사용된 데 반해 신사동 사건은 흉기와둔기가 함께 사용됐고 족적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해 10월16일 삼성동 사건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등산용 캐주얼화의 족적이 구기동 현장에서 발견된 반쪽짜리 족적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자 원한에 의한 면식범 소행에 초점을 맞췄던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당시 구기동 사건을 맡았던 동대문경찰서와 삼성동 사건을 담당했던 강남경찰서가 족적을 비교 분석하기 위해 한 차례 만나 회의를 열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삼성동 사건 한 달여 뒤 혜화동에서 둔기를 이용한 노인 살해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자 경찰은 그제야 동일범의 소행으로 결론짓고 관계 경찰서 회의를 뒤늦게 소집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이 3개 경찰서 관련 과장 등을 불러 모았을 때는 이미 8명의 무고한 목숨이 무자비한 쇠망치에 잔혹하게 살해된 뒤였다. ◆ 매주 열린 대책회의도 `無用' = 혜화동 사건 직후인 11월 하순 서울 시내 일선 경찰청을 지휘하는 서울경찰청 주재로 첫 대책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서울청 형사계장, 강력계장, 동대문.서대문.강남서의 형사.수사과장및 강력반장 등 20명이 참석했으며 이 때부터 매주 1차례씩 각 경찰서를 돌며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 각 경찰서는 범행현장 증거물과 수사내역을 공유하고 수사 방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또 통화내역 수사, 캐주얼화 구매내역 확인, 시내버스, 지하철등 교통카드 내역 확인, 정신병력자 현황 확인 등을 각 경찰서 별로 분담했다. 경찰이 뒤늦게 공조수사의 틀을 갖췄지만 내부적으로는 일선 형사들의 반발과 실적을 위한 업무경계 이탈로 수사는 크게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일선 형사들은 "연쇄살인범은 외국에서나 있는 일 아니냐"며 상부의 수사 지침에 반발하기도 했으며 일부는 실적 올리기에 급급, 다른 부서의 일을 임의로 처리하는 일도 있었다. ◆ "강력범죄 전담부서 필요" = 일선경찰서의 한 과장은 "3명 이상 살해된 주요강력사건이나 이번 사건처럼 일정한 패턴을 보인 사건은 상급기관의 전담부서가 직접 맡아 수사해야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살인 사건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팀 또는 부서를 만들고 주요 강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수사력을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또 사회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에서 비롯되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확산되는 추세인 만큼 시민들의 제보를 활성화하는 대책도 절실하다고 경찰은 제안했다. 원한 등에 의한 범죄는 피해자 주변인물에 대한 탐문수사를 충실히 하면 어느정도 해결이 가능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한 무동기 범죄는 탐문수사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혜화동 살인사건을 수사해온 동대문 경찰서 관계자는 "유씨는 노인들을 죽이고 방에 불을 지른 뒤 유유히 빠져나와 집 근처에서 약 1시간동안 서성거리며 불이 잘타는지 지켜봤다더라"며 "주민들이 동네에 서성이는 낯선 사람을 조금만 주의깊게보고 신고했더라도 검거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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