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악마가 없다면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 만들어진 악마 (폴 캐러스 지음, 소이연 펴냄)


모든 종교에는 필수조건처럼 악마가 등장한다. 붓다는 사악한 존재인 마라의 유혹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고 복음서에 전해진다. 고행을 택한 두 성자(聖者)를 향한 악마의 유혹은 상세한 부분까지 흡사하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는 '세트', 그리스에서는 '티폰',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디에바'라는 이름을 가진 자연신이 거역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닌, 그러나 자비롭지 못한 악신(惡神)으로 인간들의 숭배를 받았다. 이 책은 인류의 종교가 공포에서 비롯됐다는 대전제 하에 악마적 존재가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통해 입증한다.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악과 악마에 대한 관념과 이미지가 어떻게 변천했는지, 각 시대와 민족의 깊이 있는 악마에 대한 묘사를 풍부한 도판과 함께 보여준다. 저자는 인류 역사 초기에는 선신(善神)보다 악마가 더 큰 숭배를 받았다고 지적한다. 중국을 제외한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에서는 악마에 대한 발전이 체계적으로 진행됐으며 이는 인류의 정신사 발전에서 필연적인 과정을 도맡았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의 찬란함이 더 눈부시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 같은 '이원론'은 특히 페르시아에서 악을 누르는 선의 우위, 선과 악의 힘의 균형 등을 설파하는 근거가 돼 훗날 마니교, 유대교, 그리스도교가 골격을 세우는 데 공헌했다. "왜 신은 악마를 죽이지 않는가?"라는 해학적인 물음에 대해 저자는 "신과 악마는 상대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만약 악마가 없다면 신은 더 이상 신일 수 없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악이 존재하기에 선은 선한 것이며 악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종교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던 중세에 횡행한 '마녀사냥'에 대해 책은 상당부분을할애하고 있다. 교황청은 문서까지 만들어 마녀사냥을 방조하거나 응원했으며 멀쩡한 사람들까지도 악마와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무자비하게 고문당해 죽기도 했다. 심지어 한 유명한 마녀사냥꾼은 누르면 칼날이 안으로 들어가는 스프링 달린 칼을 갖고 다니기도 했다.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 칼로 찔렀고 "칼날에 찔리고도 피가 나지 않는 이 사람이 바로 마녀"라며 고발하곤 했다. 나중에 스프링 달린 이 칼의 비밀이 탄로났지만 마녀사냥꾼은 벌을 받지 않았다. 결국 이 같은 극한적인 대치상태가 종교개혁이라는 필연적인 과정을 이끌어 냈다. "고통은 결핍에서 생겨나고 결핍은 향상에 대한 욕망을 부채질"하기에 악마에 대한 저항은 인류의 새로운 발명과 진보까지도 이끌어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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