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글로벌 스탠더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라는 말이 IMF 외환위기 이후 일상 용어가 됐다. 새로운 말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삼국시대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불교였다. 신라는 불교 수용이 가장 늦었지만 적극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였고 덕택에 통일을 주도할 수 있었다. 역으로 조선의 몰락은 ‘근대화’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였다. 전후의 재건기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이미 세계 경제에 편입됐다. 지난해 9월 현재 한국 기업의 해외현지법인이 4만2,000개에 달하고 대외투자액은 820억달러를 넘는다. 외국 기업의 대한국 투자도 한해 100억달러를 넘는다. 또한 한국은 한달에 300억달러 이상을 수입하고 수출한다. 요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다시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새 정부가 약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소극적으로 수용했던 글로벌 스탠더드를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존 제도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접목하는 정도가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우리 것을 가미하는 수준이어야 할 것 같다. ‘안에서 밖’을 보는 자세가 아니라 ‘밖에서 안’을 보는 자세로의 시각 변화가 요구된다. 신라가 수천 년 이어진 토속신앙을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였듯이 말이다. 물론 17세기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뀔 때와 같은 충격이 불가피하다. 나를 중심으로 하늘이 돈다는 생각을 바꾼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필자가 속한 회계산업에도 글로벌 스탠더드의 큰 변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는 2011년부터 한국회계기준을 포기하고 공개기업에 전면적으로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한다. 회계기준은 기업이 쓰는 언어인데 이를 글로벌 코드에 맞추는 것이다. 한국만의 회계 언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을 저(低)평가해왔던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제 만국공용어로 우리를 내보이게 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문제를 해소하면서 투명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국가운영시스템의 글로벌화도 필수적이다. 세계 은행이 17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봤더니 기업투자와 직결되는 창업자유지수에서 한국은 110위에 머물렀다. 토지 관련 규제만 해도 120여개에 이르고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데 70여개 법령을 동시에 적용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한마디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불공단의 전봇대 이야기는 한국의 규제에 대한 접근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까지 규제는 공익을 위한 선의의 정책이며 따라서 규제를 철폐했을 때 공익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완전한 증거가 없으면 설사 그 규제가 산업발전의 저해 요인이 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규제자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이며 법과 규정은 서비스 제공의 도구다.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지만 모든 경제 주체를 규제대상으로 보는 사고방식은 없어야 한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제는 규제가 아니라 산업을 논할 때다. 인수위 활동의 영향으로 일부 정부부처에서 규제개혁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앞선 정부들의 예에서 보듯 규제완화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규제의 해소 차원을 넘어 산업의 육성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기존의 법령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하에서 산업발전의 틀을 새로 짤 필요가 있다. 프랑스 혁명보다 미국의 건국이 쉬운 일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출발해 새로운 산업육성의 틀을 만드는 것이 규제완화보다 용이할 수도 있다. 아마 국회의 조속한 비준을 요구받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 EU FTA 체결도 우리에게 법규와 제도 전반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을 앞당기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개방경제의 파고가 더 높아지는 세계 경제환경 속에서 만년 중진국을 벗어나 연 7% 성장, 국민소득 4만불 그리고 세계 7대 강국을 지향하는 ‘747’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기 위해서는 국정운영의 근저에 글로벌 스탠더드가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투명성을 갖추고 국가전반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알립니다 송현칼럼의 고정필자가 이달부터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에서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으로 바뀝니다. 안회장은 서울대 상대를 나와 홍익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공기업학회 감사, 기금정책심의회 위원, 정부투자기관 운영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고려대 경영대 겸임교수, 한국경영학회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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