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36은 만패불청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구리는 일단 하변의 패를 보류하고 흑37로 팻감만들기에 나섰다. 이세돌은 백38로 받아주었다. 하변의 패를 따내고 싶지만 우변이 완벽한 흑의 확정지로 변한다면 어차피 많이 진다. 구리의 흑45가 실착이었다. 이곳은 참고도1의 흑1로 튼튼히 잇는 것이 정수였다. 백이 하변의 패를 2로 따내면 흑3으로 우변을 몽땅 접수하여 무조건 흑승이었다. 실전은 백46으로 붙이는 기상천외의 묘수를 남겼다. 이세돌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즉시 백46으로 붙여갔다. 다시 우변에서 큰 패가 나게 되었는데…. 바로 이 장면이 이 바둑의 하이라이트였다. 백이 이 바둑을 이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즉시 수를 낸 것이 문제였어요.” 최철한9단의 결론이다. 수가 있다는 것을 읽고서도 즉시 결행하지 않는 분별력이 필요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창호형 같았으면 즉시 수를 내지 않았을 겁니다.” 백이 이기는 길은 참고도2의 백1로 가만히 패를 따내는 것이었다. 흑이 2로 보강하면 군말없이 또 3으로 따내어 백승이다. 수가 있음을 읽고서도 그 수를 즉시 결행하지 않는 감각. 진정한 고수의 감각이여. (32…29의 왼쪽. 3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