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 세계은행 총재의 자격조건

파이낸셜타임스 5월 31일자

미국과 유럽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각각의 지배력을 여전히 유지하려고 한다. 아집에 빠져있다 혁명으로 몰락한 프랑스 부르봉 왕조 같은 역사적 사례의 교훈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도 미국이 내세운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 후보자는 그나마 적격 인물이다. 다만 세계은행 이사회는 그의 임명 여부를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 후보와 기관 양측을 고려하더라도 이사회는 임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폴 울포위츠 전 총재의 사임 이후 세계은행은 보다 신뢰가 가는 리더가 필요하다. 새 총재는 은행관리 체계와 직원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사회 안에서 빚어진 상처들을 치유해야 한다. 올바른 방향, 확실한 리더십,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오늘날 확연히 달라진 세계 정황에 맞춰 61년 된 은행의 낡은 구조를 탈바꿈시켜야 한다. 졸릭은 이러한 조건에 잘 들어맞는다. 53세라는 그의 젊은 나이도 개혁적인 총재로서 적합하다. 그는 잘 갖춰진 외교 능력과 유럽 사람들과의 오랜 유대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런 배경은 울포위츠 사태로 일어난 미국과 유럽간의 충돌을 감안할 때 아주 유리하다. 그는 또 고학력자에 날카로운 전략 감각도 가졌다. 골수 공화당원이지만 이데올로기적이기보다 실용적이고 네오콘이라기보다 현실주의자다. 그럼에도 세계은행 총재 자격을 갖췄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하나는 세계은행이 앞으로 쇄신해야 할 부분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가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패니매(미 주택담보금융회사)와 국무부에서 쌓은 그의 경력이 세계은행과 같은 여러 국가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기관 총수가 될 자격조건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의 문제다. 결정적으로 과연 그가 미국의 득실을 우선하던 헌신적 지지자에서 전세계 이익을 대변하는 믿을 만한 공복(servant)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만 충족된다면 그는 총재 자격이 된다. 미국이 졸릭을 비롯해 몇 명의 다른 후보자를 함께 내세웠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 다른 후보자들이 미국 외 세계 각국에서 뽑혔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졸릭이 비교적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기는 하나 판단은 이사회에 달렸다. 반드시 정확한 심사로 후보검증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이사회가 늑장부리지 말아야 할 중요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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