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미국식 문화가 우리 생활을 지배한다

미국인 의사·변호사들이 국내서 진료·변호<br>특소세등 내국세 시스템도 전면개편 가능성<br>당분간 무역적자·실업자 양산 부작용 우려

“예외 없는 포괄적 협정, 모든 자유무역협정(FTA)의 금과옥조(gold standard) 돼야.’ 오는 5월 초 한미 FTA 협상을 앞두고 미국 측이 한국에 던지는 무언의 통상압력이다. 전세계 어느 FTA보다 한미 FTA가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농협 조사에 따르면 한미 FTA가 발효되면 농수산물 수입 시장에서 미국산이 중국산을 제치고 한국 식탁을 점령하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 농업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위의 미국과 결전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서비스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파란 눈의 미국인 의사ㆍ변호사 등이 한국인을 상대로 진료ㆍ변호를 하게 된다. 물론 미국의 대형 볍원ㆍ로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고용해 진출할 가능성이 크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 식에 머물렀던 국내 서비스 질’은 분명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체신ㆍ통신 등 공공 서비스 시장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심지어는 특소세 등 내국세 시스템도 전면 개편될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추진 중인 중장기 조세개편도 한미 FTA 앞에서는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산 규범과 서비스가 몰려온다=이홍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FTA 팀장은 “자본시장 투명성, 노동시장 유연성 등 규범과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가 가장 거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이 우리에 요구한 것은 스크린쿼터만이 아니다. 외국인 TV 라디오 방송 소유제한 철폐, 케이블 TV 외국인 지분제한 완화 등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덧붙여 미국식 시스템에 맞지 않는 정부의 금융 등 자본시장 규제 철폐, 통신업체 외국인 지분제한 완화 등 수많은 이슈가 한미 FTA 문턱에 자리잡고 있다. 한마디로 의료ㆍ법률뿐 아니라 미국 측에서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서비스 분야는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다. 여기에는 정부의 각종 규제 내용도 당연히 포함된다. 국제경영개발원(IMD)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외국문화 수용 적극성은 53위에 불과하다. 한미 FTA는 우리 국민의 외국문화 수용도 순위를 큰 폭으로 향상시킬 것이 뻔하다. 바꿔 말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 미국식 규범과 시스템이 한국을 움직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소세 등 세제개편도 불가피=한국조세연구원 분석에 의하면 미국은 한국의 주세ㆍ담배세ㆍ자동차세ㆍ특소세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미국은 이들 내국세제가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 FTA에서는 서비스뿐 아니라 세제 등 비무역장벽에 대한 미국 측의 과감한 공세가 예상된다. 조세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협상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내 조세체계도 미국식에 맞춰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조세도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무역수지 적자 속, 실업자도 사회적 문제로 부상=관세철폐로 국내 섬유산업은 백조로 화려하게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세계 최대 섬유시장. 하지만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섬유 부문에만 유독 높은 관세율을 매기고 있다. 섬유제품 관세율은 9.31%로 기계ㆍ전자제품 등 일반상품 평균인 1~3%인 3~5배에 달한다. 섬유산업이 부활하는 반면 대일 일본 의존도가 높은 기계공업 등 제조업체는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이는 등 산업별로 명암이 극명하게 갈린다. 경쟁력이 가장 취약한 농업의 경우 앞으로는 미국산 제품과 한판 경쟁을 벌여야 한다. 관세철폐로 중국산보다 가격이 낮아지면서 쇠고기ㆍ과실류ㆍ낙농제품 등의 수입이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미국 측 분석에 의하면 이 같은 점으로 인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지속적으로 감소, FTA 발효 후 머지않은 시기에 적자로 반전될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에서 대거 실업자가 양산되는 부작용도 예상되고 있다. 한미 FTA는 이처럼 경제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도 예측하지 못하는 명과 암을 야기시키며 한국 사회ㆍ경제에 또 다른 화두를 던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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