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정당정치 불신 위험하다


서울시장을 새로 뽑는 10ㆍ26선거를 앞두고 대중의 정치적 열정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시민사회 후보인 박원순 변호사와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 가운데 한 사람을 야권 단일후보로 결정하는 투표가 진행됐던 지난 3일. 오후에 들어서면서 트위터에 올랐던 '박원순' 관련 글은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이후 투표장인 장충체육관에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고, 결국 단일후보로 박원순 변호사가 뽑히면서 민주당은 시민사회와의 승부에서 고배를 마셨다. 민의 대변하지 못하는 정당 이런 민심의 표출로 민주당은 딱한 처지가 됐다. 심지어 손학규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가 번복하는 소란까지 벌어졌다. 민주당이 계속 대중의 변화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다음해 대통령 선거 후보까지 시민사회에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이라고 형편이 다르지는 않다. 나경원 후보가 대중적 인기를 발판으로 표밭을 종횡무진으로 뛰고 있지만 박원순 후보와의 여론조사 지지율 격차가 10%가량 벌어져 있어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나 후보가 판세를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고민에 휩싸였다. 나경원 후보 지원에 전폭적으로 나서자니 패색이 짙은 선거에서 책임론을 뒤집어 쓸 공산이 크고, 그렇다고 머뭇거리다가는 여권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게 될까 걱정하던 박 대표는 결국 이도저도 아닌 '리베로 지원'을 선택했다. 박 전 대표의 더 큰 고민은 '안철수 열풍'이다.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지지도는 박근혜 독주체제를 허문지 이미 오래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안철수 열풍'과 '박원순 신드롬'은 어쩌면 대의정치와 정당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거를 통해 뽑힌 정당의 대표들이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 그동안 국민들은 정치권에 묻고 또 물었다. 평생을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왜 가난의 쳇바퀴는 벗어날 수 없는지, 십수년 밤샘 공부 끝에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지, 도대체 무슨 까닭에 온국민이 평생 경쟁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를. 그러나 현 정부와 정당은 이런 질문들에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공정사회라는 화두를 꺼냈고, 올해는 공생발전의 틀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진정성을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국민에게 무한경쟁을 권하고 승자독식을 조장한 데 대한 진심 어린 반성이 결여됐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를 동조하거나 방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도 커졌다. 그렇다고 시민사회가 추대한 박원순 후보가 뾰족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는 정부와 기존정당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반작용이 '박원순 신드롬'의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기득권층이 해법 적극 제시를 우리 사회의 이런 기류를 보면서 독일의 여성철학자 해나 아렌트가 떠올랐다. 하이데거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해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저작을 통해 소수의 대표자가 국정을 주도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고대 폴리스에서 행해졌던 방식의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치를 복원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오랜 인류역사를 통해 검증 받은 대의정치와 정당정치 제도에 대한 불신은 위험하다. 참여정치를 꿈꿨던 아렌트조차도 '선한 동기를 가진'시민들이 거침없이 쏟아내는 열정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이 대중의 열망을 담아 새로운 진로를 제시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급격한 위험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은 경제적 상층부도 함께 고민할 일이다. 예컨대 워런 버핏은 최근 "내 비서도 소득의 36%를 세금으로 내는데 나는 17.4% 밖에 내지 않는다"면서 부자에 대한 증세를 촉구했고, 16명의 프랑스 억만장자도 '버핏세'를 내겠다고 청원서를 냈다. 이젠 우리사회도 정치권은 물론, 기득권층에서도 사회의 건강성 회복을 위한 해법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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