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日 경제 불투명…투자금 '썰물', 엔 캐리 트레이드도 되레 확대

[원·달러 환율 급락] 엔화 약세 왜?<br>美·EU 출구전략에 엔저 가속<br>달러당 90엔대 진입 가능성


일본 대지진 직후 일본 엔화로 쏠리던 국제 투자자금이 불과 10여일 만에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 3월16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2차대전 이후 최저치인 달러당 76엔대까지 치솟으며 선진7개국(G7)의 외환시장 공조 개입이라는 이례적 조치를 이끌어냈던 엔화 가치는 4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한때 84.35엔까지 떨어지며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로화와 호주 달러 등에 대해서도 11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달러당 85엔이라는 심리적 저지선이 쉽게 뚫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스터 엔'으로 불리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재무관은 이날 "대지진과 원자력발전 사고 이후 해외자금 유출이 우려된다"며 "향후 수개월간 엔화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달러당 90엔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외환시장 분위기 급변=3월11일 대지진 직후 해외의 고금리 자산으로 투자했던 일본의 개인 투자자들, 일명 '와타나베 부인'들이 대거 엔화를 사들일 것이라는 예측 아래 엔화는 연일 강세를 보였다. 결국 엔화 가치가 1달러당 76.25엔이라는 전후 최고치를 경신하고 G7 중앙은행이 엔화 매도 개입을 단행한 뒤 시장은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달 말부터는 오히려 시장 분위기가 '엔 매도'로 역전되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는 원전 악재와 산업계의 생산차질 장기화 파장 등이 윤곽을 드러내자 엔화로부터 글로벌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엔화 수요 급증으로 해외자산에 투자됐던 일본 기업의 투자자금이 일본으로 대거 유입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도 빗나갔다. 대지진 직후 엔고(円高)를 부추겼던 엔캐리 자금 청산이 사실상 '소문'에 그친 것으로 드러나고 대지진 수습 과정에서 일본은행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 등 금융완화 정책이 이어지자 시장에서는 일본에서 저금리 자금을 빌려 경기가 좋을 때 금리가 높은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캐리트레이드 거래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구 찾는 미ㆍ유럽연합(EU), 돈 푸는 일본=특히 대지진 여파로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는 일본과 달리 미국과 유럽 등에서 시작된 출구전략 논의와 아시아 각국의 금리인상 움직임은 엔화 약세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오는 7일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 기정사실화됐다. 미국 역시 최근 고용지표가 대폭 개선되는 등 경기가 호조를 나타내면서 2차 양적완화를 끝으로 슬슬 출구를 모색할 준비에 돌입했다. 미국 경기호조에 대한 기대감은 호조세를 보이는 아시아 각국에 대한 투자심리를 되살리며 지금까지 '안전자산'인 엔화에 쏠렸던 관심을 리스크 자산 쪽으로 돌려놓고 있다. 고 쿤 ANZ 내셔널뱅크 시장경제 및 전략 수석은 "글로벌 시장이 리스크 투자로 회귀했다"면서 "강한 경제지표에 힘입어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에 돈을 투자하는 요즘 같은 환경에서는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후카타니 고지 크레디스위스증권 외환조사부장은 일본의 초저금리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자산으로 운용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발생하기 쉬운 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당분간 엔저 기조 이어질 듯=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조만간 달러당 85엔대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달러화뿐 아니라 다른 주요 통화에 대해서도 엔화는 일제히 약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유로화에 대해 1유로당 120.06엔까지 하락해 지난해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호주달러에 대해서도 1호주달러당 87.70엔으로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일각에는 아직 투자자들의 리스크 회피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데다 일본 경제가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빠져들 경우 일본 기업의 엔화 수요가 고조될 수 있다며 엔고 재연을 예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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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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