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제살 깎는 패배적 'ISD 재협상'

민주당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대한 미 측의 재협상 약속만 받아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한다. 출범부터 FTA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참여 정부의 후계자인 민주당이 FTA를 반대할 수 없어 나온 '꼼수'지만 비겁할 뿐 아니라 국익을 도외시한 처사다. 정부를 운영한 집권 경험이 있으니 ISD를 폐기하는 재협상을 하려면 미국이 요구할 반대 급부를 수용해야 하는 것을 민주당 지도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ISD 폐기를 위해 미 측이 국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확대하라고 하면 들어줘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이런 일은 민주당이 잘 알듯 미-호주 FTA 협상에서 있었던 일이다. 협상의 기본을 무시한 채 "ISD만 폐기하는 재협상을 하라"며 무작정 뭉개는 답을 내놓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해 말 미 측이 요구한 재협상에서 자동차 분야 이익을 양보했지만 우리도 미 측의 축산업과 제약업 부문 이익을 빼앗는 역공을 취한 사실을 기억할 테니 말이다. 미 측이 얻은 자동차 부문 이익이 우리가 받아낸 축산업과 제약업의 이익보다 커서 문제였지만 피해 당사자인 국내 자동차업계가 FTA를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해 일단락됐다. 그러나 ISD 재협상은 국익에 두 번 상처를 낸다. 멀쩡한 ISD를 폐기하면서 농민까지 타격을 입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ISD가 문제 없다는 사실은 협상 타결 후 ISD 평가보고서에 긍정적 효과를 나열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후 미 측의 재협상 요구를 불편해 했지만 "ISD를 빼자"고 한 적은 없다. ISD에 대한 문제 제기가 "국내 정책은 보편성과 일관성이 부족한 반면 미국 정책은 그렇지 않다"는 패배주의적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을 노 전 대통령은 싫어했다. 최근 대미 투자가 급증해 이젠 미국의 국내 투자액을 추월했다. 미국의 일방적 정책에 당할 수 있는 우리 측 투자가 2만건에 달하는 반면 그 반대는 1만건에도 못 미친다. 자존심을 넘어 실리적 필요성까지 커진 ISD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은 뭐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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