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상처뿐인 영광


미국을 디폴트 위기로 몰아갔던 연방정부 채무한도 상향 문제가 가까스로 일단락됐다. 노심초사했던 세계는 한숨을 돌리면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미국을 질타하고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미국은 세계 경제에 기생충 같은 존재"고 미국이 엄청난 부채를 쌓아가면서 전세계 금융을 위협하고 있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미국의 우방국인 호주 총리도 "채무한도 증액은 축하할 일이 아니며 앞으로 더 큰 경제적 고통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재정이 엉망이 된 건 불과 10년 만이다. 지난 1980년 이후 지속적으로 재정적자를 기록했던 미국은 아버지 부시 행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의 세금인상 등 재정건전화 노력과 주식시장 호황에 따라 자본이득세가 늘어나면서 98년부터 4년 동안 재정흑자를 기록했다. 재정이 건실해지자 2010년까지 민간이 보유한 정부부채 3조8,000억달러를 전액 상환할 것이라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당시 정부의 총 부채는 5조8,000억달러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2001년 집권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거품이 소멸되면서 재정여력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과 2003년 대규모 감세조치를 취했다. 여기에 두 차례의 전쟁은 재정부담을 가중시켰으며 2008년 터진 금융위기는 재정을 최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현재 미국이 안고 있는 부채 14조3,000억달러 가운데 6조달러 이상이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늘어난 것이다. 정치적 이해와 이념에 따른 감세는 미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재정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은 흑자를 부채 상환에 사용하는 대신 감세에 활용하는 등 정치적인 사용을 원한 것이 문제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번 연방정부 채무한도 상향을 둘러싼 미 정치권의 대립에서도 이 문제는 핵심이었다. 티파티(Tea party) 의원들의 거센 입김에 공화당은 어떤 경우라도 증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정치적 타협을 거부하고 끝내 이를 관철시켰다. 이에 따라 재정수입 증대방안이 빠진 이번 합의안이 미국을 재정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난달 인터뷰를 위해 만난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 정치권이 너무 분열돼 있어 막판에 몰려야 타협을 하고 8월2일에나 채무한도 상향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며 "디폴트는 피하겠지만 미국 경제는 앞으로 더욱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그의 말처럼 미국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정치인들이 미국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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