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이순우 우리은행장 연임 포기… 인선 전말과 문제

투서… 음해… 학맥… 파벌… 후진형 인사시스템 그대로 드러내


지난해 4월. 우리금융 회장추천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앞서 일부 우리은행 직원들은 유력 후보인 A씨를 추대하자며 대놓고 지지를 표했다. 몇몇 직원들은 당시 후보였던 B씨는 절대 입성하면 안 된다며 사정 당국에 투서를 보내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일부 임원은 회장 후보군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달라며 언론에 청탁 아닌 청탁을 했다. 우리금융 회장직을 놓고 전례 없이 혼탁한 양상이 벌어졌던 셈이다.

1년 반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에는 차기 우리은행장직을 놓고 너무나 판박이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영락없이 후진국형 금융 인사시스템이 재현되고 있다. 아니 정도가 더 심해졌다. 각종 투서와 음모론은 예사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곳이라고 하지만, 행장후보추천위원회에 앞서 이 기구를 무력화하는 인사 내정설이 20여일 전부터 돌았다. 심지어는 금융 당국도 모르는 '옥상옥 인선'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조직을 떠난 과거 인물들이 유력 후보에 가담, 편 가르기를 부추기고 있다.


우리은행 안팎은 금융계 인사들은 초기 인선구도부터 내정 단계까지 우리은행장 인선에 있어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차별적 투서·음모론

지난해 우리금융 회추위를 앞두고 사정 당국 앞으로 투서가 날아들었다. 모 후보의 사생활을 끄집어내는 음모론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돈과 가족 문제 등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후보들은 가만 있는데 이에 기생하려는 주변인들이 더 부추겼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검증라인 확인 결과, 이는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 났다.

하지만 덮어졌던 이 문제들은 이번 행장 인선 과정에서 또다시 불거졌다. 이번 공격 대상은 이순우 우리은행장이었다. 후보 주변 인사들이 또다시 부추기면서 인사권자에게 이를 제보했다. 검증 라인 역시 이를 받아들여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전임 비서실장과의 학맥까지 공격 대상으로 거론됐다.

이 같은 배경에 더해 7인회 중 충청권 인사가 이광구 부행장을 밀어주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불거지면서 우리은행장 인선은 지난달 상순부터 이 부행장의 낙점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회장·은행장 임기가 도래하면 근거 없는 얘기들이 떠돌곤 했다. 심지어 우리은행은 내부 투서와 상호비방이 많은 조직이라고 공공연히 소문날 정도"라면서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임직원들뿐"이라고 한숨 쉬었다.

당국도 모르는 옥상옥 인선


금융계에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의 내정이 본지 단독 보도 이후 논란이 됐지만, 사실 이는 오해의 소지가 적지 않았다. 당국과 은행연합회 간에 차기 회장을 둘러싼 연락이 적어도 두 차례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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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은행장 인선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은행은 공적자금 투입기관이기 때문에 정부가 인사권을 쥐고 있다. 행장추천위원회가 '거수기'라 하더라도 크게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정보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행추위는 물론 금융 당국조차 완벽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차기 행장으로 내정설이 나오는 이 부행장은 은행과 당국의 추천 후보군(3인: 이순우 행장, 이동건 수석 부행장, 정화경 부행장)에도 들지 않았던 인물이다. 추천권이 당국 외에 다른 곳에서도 있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특정 세력에 의해 제3의 인물이 그려진다면 이는 시스템을 저해하는 행위다. 옥상옥 인선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시장 수준이 높아졌지만 미리 내정자를 선정한다는 것 자체가 유치한 인사 행태다. 과거보다 더 권위적으로 가고 있다"면서 "지금부터라도 제도적으로 관치 금융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행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짜여진 틀 속에 갇힌 행추위

우리은행장 내정설이 돌자 행추위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행추위가 늦어질수록 의혹은 깊어진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연임될 것이었으면 행추위 개최가 굳이 이렇게까지 늦어질 필요는 없었다. 행추위가 무언의 압박을 받는 모양새 아닌가. 결국 이 부행장 쪽으로 쏠리고 있는 증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행추위는 행장 선임을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7일께야 겨우 열렸다. 하지만 이 부행장의 낙점설은 이보다 보름 전인 지난달 10일부터 돌았다.

행추위 소속 우리은행의 한 사외이사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노코멘트"라고 하면서 행장 선임 과정조차 언급을 삼가하는 분위기다. 다만 외부 인사 추천은 하지 않고 전·현직 임원을 후보군으로 설정한다는 뒤늦은 답만 내놓았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과거 행추위·회추위를 읽어봤을 때 흐름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프레임을 짜놓고 논리를 만들기 때문"이라면서 "짜인 틀 속에서 행추위원들이 이번에도 역시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금회 논란… 특정 집단 전횡

이번 내정설의 주축에는 '서강대금융인회(서금회)'가 있다. 현재 은행장 가운데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 이광구(경영·76학번) 부행장과 같은 서금회에 속해 있는 인물은 이덕훈(수학·67) 수출입은행장이다. 우리은행장(2001년)을 지낸 이 행장은 2013년 차기 회장으로 물망이 올랐다가 이순우 행장에 밀렸다. 대선 캠프 참여 이력이 있던 이덕훈 키스톤PE 회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출입은행장 자리를 꿰찼다. 대선 캠프 참여 이력이 도움이 됐다는 후문이다.

이밖에 서금회는 이미 금융권에서 만만치 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서금회 회장은 이경로 한화생명 부사장(경영·76)이 맡고 있다. 전임 회장은 박지우(정외·75) 국민은행 부행장이며 이 밖에 정연대(수학·71) 코스콤 사장, 김병헌(경영·76) LIG손해보험 사장, 황영섭(경영·77) 신한캐피탈 사장 등도 서금회 멤버다. 정치권에서는 서병수(경제·71) 부산시장이 있으며,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서금회 모임에 자주 얼굴을 비쳤다. 금융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 금융권에서 K(고려대) 출신이 요직을 차지했던 것처럼 서금회도 이번 정부에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보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내부 파벌 또다시 수면위로

서금회 내정설이 돌자 우리은행 안팎으로 또 한번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연임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앉힐 경우 순서상으로는 'H(한일은행)' 출신이 행장이 돼야 하는데 'C(상업은행)'가 또 한번 행장직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우 행장과 이광구 부행장은 모두 상업은행 출신이며, 전임 이팔성 회장은 한일은행 출신이었다. 우리은행 한 관계자는 "이 부행장은 전임 수석부행장이 임기가 만료됐을 때 물망에 올랐던 사람이었지만 상업 출신이 행장이면 수석은 한일 출신이 돼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 때문에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같은 암묵적인 원칙을 깨고 이 부행장이 상업이 연달아 행장을 꿰차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직원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현직 간의 대결이 아닌, 현직 간의 싸움이라는 점도 조직원들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전·현직 인사들끼리 싸움으로는 조직원들이 동요하지 않는다. 이번처럼 내부 출신끼리 이전투구를 벌이면 우려와 걱정이 커진다. 누가 승리하든 조직에 흠집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면서 "물망에 오르는 두 사람이 사전에 차기 행장직을 놓고 서로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아쉬워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사퇴 압박이라는 왜곡 인사

서금회 라인이 내정됐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것 자체가 현 행장에게 사퇴 압박을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내정설이 기사화될수록 현직 최고경영자(CEO)에게 상처가 쌓인다"면서 "지금의 흐름은 현직CEO에게 나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얘기했다. 일부 보도대로 행추위원들이 이광구 부행장의 선임에 부정적인 것을 감안해 현직 은행장을 상대로 정부가 사퇴 압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경우 후유증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한 전직 시중은행장은 "공적자금이 투입됐더라도 순리는 필요하다"며 "민영화가 실패한 상황에서 인선까지 이렇게 왜곡된 형태로 끝날 경우 우리은행 조직 전반에 상처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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