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 이뤄진 대기업의 사장단 및 임원 인사 내용은 'SPPR'로 요약된다. 'S(Stabilityㆍ안정)'와 'P(Performanceㆍ성과)', 'P(Promotionㆍ발탁)'와 'R(R&Dㆍ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춘 인사가 주류를 이뤘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쇄신'과 '세대교체' 등이 재계 인사의 키워드였다면 올해 인사의 핵심 기조가 180도 바뀐 것이다. 이는 내년 경영환경이 올해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과 함께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발탁 인사와 R&D 강화 등이 절실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장단과 임원 인사의 큰 틀은 결국 내년에 개별 기업이 어떠한 경영 방향성을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경영 방향성은 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대기업의 인사 흐름이 유사한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기업 중 29일까지 단행된 삼성과 LGㆍ현대차ㆍGSㆍ동부그룹 인사의 특징은 안정과 성과ㆍ발탁ㆍR&D 중시의 큰 틀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성과에 대한 보상과 조직의 안정을 다져야 내년 경영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내려진 조치다. 우선 삼성그룹의 경우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검증된 인물 중용'이라는 큰 원칙 아래 부회장(2명)과 사장 승진(6명)이 이뤄졌다. 더불어 9명의 사장을 계열사 이동으로 유임시키며 안정을 도모했다. 또 임원 승진 인사에서는 R&D그룹이 전체 임원 승진의 27%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비중을 두는 한편 신상필벌 원칙에 근거한 발탁 인사를 단행해 사장과 임원 승진 인사를 마무리했다. LG그룹도 주요 부품소재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내부인사로 발령하는 등 안정성을 택했다. 이번 인사에서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사장과 이웅범 LG이노텍 부사장, 변영삼 LG실트론 부사장은 모두 각 회사의 내부 인재다. 생소한 리더십에 따른 조직 혼란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신임대표의 조직 파악 시간을 줄여 즉각적으로 업무에 몰입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그룹 차원의 배려로 풀이된다. 특히 이들 신임 대표이사의 경우 모두 기술과 생산 분야 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GS그룹은 부회장 승진 2명을 비롯해 전체 49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성과주의에 따라 인재를 대거 발탁했다. GS그룹 측이 젊고 추진력 있는 인재를 발탁해 승진시킨 것이 올해 말 인사의 핵심이라고 할 정도로 젊은 인재를 중시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건설과 현대모비스 등 일부 계열사에서 부회장직을 폐지하는 대신 총괄 사장제를 도입해 조직 안정을 기했다. 아울러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제 구축을 염두에 뒀다고 그룹 측은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이어 단행한 임원인사에서는 465명의 사상 최대 승진을 통해 성과주의의 원칙을 고수했다. 당초 목표한 650만대 판매를 웃도는 실적 달성이 유력한 상황에서 대규모 임원 승진 인사로 보상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됐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승진자 중 R&D 부문이 전체의 35%에 달해 현대차그룹 역시 미래 기술 확보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동부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이종근 동부제철 사장과 우종일 동부한농 사장, 이재형 동부라이텍 사장 등을 모두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영체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종근 신임 부회장의 경우 사장 승진 한 달여 만에 다시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파격이 연출되기도 했다. 동부그룹의 한 관계자는 "조직 안정성과 함께 보다 발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파격적인 인사를 실시했다"며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코오롱그룹은 사장단과 임원 인사에서 발탁을 가장 큰 키워드로 삼았다. 젊은 CEO를 대거 발탁해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포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