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통상전문인력이 없다

◎정부·기업 국제거래 계약관행 까막눈/4대그룹 미변호사자격소유 2∼5명불과/영미법 전문가 양성 시급/국내업체 미서 법정분쟁 작년 12건달해시장개방과 국내업체들의 해외진출 확대로 국제통상 문제가 정부 및 재계의 현안이 되고 있으나 전문인력 부족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국내 굴지의 주요기업들이 전문인력이 없어 통상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천만달러의 손실을 보는 사례까지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태다. ▲피해사례=W그룹은 최근 미캘리포니아의 한 업체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피아노를 공급키로 했으나 계약위반으로 3천만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했다. S그룹의 한 계열사도 테이프 제작과 관련한 영업비밀(Trade Secret)을 침해했다며 미업체로부터 1천만달러의 소송에 휘말려 5백만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5백만달러는 이 회사의 지난해 순익과 맞먹는 규모다. 통신업체인 S사는 남미의 통신사업 참여 신청서에서 회사의 영문명에 주식회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CO.」, 「Ltd.」를 혼용하는 실수로 참여자격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국내에 진출한 미국의 M법률사 관계자는 『한국업체가 통상분쟁으로 미법정에 선 사례는 95년 5건에서 지난해 12건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외국업체와의 계약과정에서 해석상의 오류나 법률용어에 대한 시각 차이로 엉뚱한 결과를 낳아 소송까지 가는 사례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Cancel」의 경우 소급효과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사후 결과에서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는데도 국내 전문가들은 단순히「취소」정도로 해석하고 넘겨버린다. ▲전문인력 부족=이같은 분쟁은 전문인력 부족이 가장 큰 이유. 이 분야에 가장 앞서 있는 국내 4대그룹마저도 미변호사 자격을 갖춘 인력은 2∼5명에 불과하며, 한명도 없는 곳도 있다. 미국에서 일하다 올해 초 귀국한 김영기변호사는 『정부나 민간기업 모두 국제거래에 적용되고 있는 영미법 바탕의 계약관행에 너무 어둡다』며 『전문가를 시급히 양성하지 않으면 분쟁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지적했다. 영미법은 계약서 작성 때부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세세하게 규정한다. 미국에서 국제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지난 95년 4월 귀국 삼성전관 기획팀 과장으로 있는 이경원씨는 『국내에서는 영미법 계열의 통상전문가를 키울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에 1백명 안팎의 미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가 있으나 이들을 수용할 여건이 안돼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이들을 스카우트했다가도 보수가 적은 데다 과장, 부장 등의 직함으로 기존 조직의 틀 속에 넣어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대책 시급=외국 컨설팅업체의 국내 지사에 근무하고 있는 정모씨는 『25명의 노련한 전문가들이 버티고 있는 USTR(미무역대표부)와 한국 통상대표들과의 협상을 보면 마치 대학생과 국민학생이 토론을 벌이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 기껏 법률전문가를 채용했지만 사무관이나 서기관 발령을 내 자문 외에는 권한이 없어 꺼린다는 것이다.<백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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