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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절제가 미덕? 솔직한 감정 표출이 사회 바꿨다

■인간다움의 조건(스튜어트 월턴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br>행복·분노·경멸 등 10가지 감정<br>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br>조절·극복 노력이 발전 원동력

행복과 분노, 경멸, 수치 등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며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사이언스북스


찰스 다윈(1809~1882)은 1872년에 출간한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통해 6가지 인간의 기본 감정을 밝혔다. 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이 그 기본 감정들이며 이는 다양한 지역과 인종을 뛰어넘어 보편적이고 선천적, 규칙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가인 저자는 다윈이 꼽은 인간의 기본 감정에다 질투, 수치, 당황, 경멸의 4가지를 덧붙여 10가지 감정을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감정'으로 규정하고 이 책을 집필했다. 책은 개별 감정이 처음 시작된 기원에서부터 국가나 언론ㆍ광고ㆍ매체 등이 적극적으로 감정을 이용하고 조작하는 현대사회까지 두루 살피고 있다.


공포(fear)는 '임박한 위험의 감지나 악에 대한 염려에서 생기는 고통이나 불안의 감정'으로 정의되고 다윈이 찾아낸 생리적 징후로는 눈썹이 올라간다, 몸이 굳는다, 숨이 멎는다, 움츠리고 웅크린다 등이 있다. 반대로 행복(Happiness)은 '좋다고 보이는 것을 손에 넣었거나 성공했을 때의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상태'로 정의되고 빙긋 웃는다, 입가가 오므려진다, 눈썹 바깥쪽 귀퉁이가 내려간다, 눈이 환해진다, 얼굴에 홍조가 돈다 등의 생리적 징후를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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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같은 감정을 기본형을 살펴본 뒤 그 기원을 거시적으로, 문명사적으로, 실존적으로 성찰한다. 가령 공포의 경우 선사시대의 무덤과 동굴 벽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자연 앞에서 느끼는 원초적 감정인 동시에 무서운 권력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1469~1527)는 권력이 인간에게 어떻게 공포를 유발하는 지를 교묘히 다뤘다. 반면 약소국 프로이센을 유럽의 패권국으로 도약시킨 프리드리히 대제(1712~1786)는 공포로 인한 콤플렉스에 평생을 괴로워했다. 아들을 강한 무인(武人)으로 키우고자 한 아버지에게서 어려서부터 욕설과 구타에 시달린 그는 옷 갈아입기를 죽기보다 두려워했다고 한다. 아버지한테 맞아가면서 힘들게 겨우 지금의 자리로 올라선 자신이 다른 옷을 입으면, 낯설어 보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공포'를 느낀다는 일화는 감정이 개인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보여준다.

'분노'라는 감정의 경우, 저자는 참정권 확대를 비롯한 서양 사회에서 이뤄진 발전은 예외 없이 '분노의 거센 분출'을 통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단식 투쟁을 하고 의사당 유리창을 부수고, 우체통에 불붙은 걸레를 던져 넣은 영국 여성들의 투표권 쟁취 사례가 있다. 또한 권력 앞에서 느끼는 공포의 감정을 극복한 것도 문명사회의 축적에 기여했다. "산업 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영국에서 에티켓이 발달한 것은 부를 거머쥐고 무섭게 상승하는 부르주아에게 두려움을 느낀 귀족들이 자기들끼리만 알아보는 복잡하고 정교한 경멸의 기법을 개발한 데 골몰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관찰도 흥미롭다. 감정에 대한 반응과 이를 조절하려는 노력이 문화사를 바꿨다는 얘기다.

감정의 절제가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의 솔직한 표출이 개인은 물론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는 긍정적 깨달음을 안겨주는 책이다. 2만2,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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