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선행학습금지법? 신경 안써요"

12일 법 시행에도 교육현장은 냉랭… "취지 좋으나 현행 입시와 동떨어져"

특목고와 형평성도 고려 안돼

일반고 소외현상 더 심화 우려


"선행학습금지법이요? 사실 별로 신경 안 씁니다" (서울 A고교 교사)

"1학기 때랑 달라진 게 없어요. 진도 그대로 나가던데요?" (서울 B 고교 이과 2학년생)

공교육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공교육정상화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하 선행금지법)'이 첫 시행된 지난 12일. 학교 현장에서 만난 교사와 학생들의 반응은 다소 냉랭했다. 시행일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교사도, 학생도 많지 않았다.


교육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교사들은 선행금지법의 취지에는 동감하면서도 교육 당국이 현행 대학입시를 충실하게 준비하기 위해 일부 선행학습이 필요한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쟁점이었던 사교육 규제가 대부분 빠진데다 교과 편성이 보다 자유로운 특목고 등과의 형평성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불만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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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부와 학교 현장이 따로 노는 것은 무엇보다 대학수능능력시험 등 입시 제도의 변화 없이는 선행학습의 근절이 힘들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수능 시험 자체가 종합적 그림을 그린 뒤 문제를 푸는 것이라 미리 진도를 끝내지 못할 경우 성적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도 수원시의 수학 교사인 김 모 씨는 "고2 이과는 2학기 진도인 수2 부분을 1학기에 중간 이상 나간 상태"라며 "지난해처럼 2학기 말까지 고교 수학 교과과정을 전부 끝낼 것 같다"고 말했다. 고3 수업시간을 EBS 문제집 풀이에 할애하려면 해당 교과의 진도를 빠르게 나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약 70%에 달하는 'EBS 교재의 수능 연계'에는 동일한 문제 유형을 숫자만 달리하거나 문제집에 나온 문항을 똑같이 출제하는 사례까지 있어 학교로서도 포기하기 힘들다. 고3 학생을 둔 한 한 학부모는 "우리 아들도 고 2때 3학년 과목인 기하와 벡터를 배웠다"며 "교육청 보고가 필요한 정기고사 대신 그렇지 않은 수행평가 등을 이용했는데 비슷한 방법을 또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 같은 학교의 우려를 반영해 고3은 학년제로 교과과정을 운영하도록 고시해 기하ㆍ벡터 등 3학년 과정이 1학기까지 마무리될 수 있게 했으나 평가원의 모의고사 등에도 채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도출된 선행금지법이 타깃을 잘못 선정해 결국 유명무실해 졌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제대로 된 운영 매뉴얼이나 대안이 없어 규제 역시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다수였다. 서울 지역 한 고교 교사는 "현 고교 교과과정 자체가 모두 선택과목인데다 한 과목을 특정 시기에 몰아 듣는 집중이수제 등이 가능한 만큼 빠져나갈 구멍도 많다"며 "원안에서 학원 사교육 근절 방안이 삭제되면서 사실상 제 기능을 잃은 셈"이라고 말했다.

선행학습의 온상지로 지목 받아 온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각종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사실상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이 같은 규제가 강화될 경우 일반고 소외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서울과학고와 대전과학고 등 7개의 과학영재학교의 내년도 입학 경쟁률은 18.41대 1로 나타나며 전년도(16.09대1)보다 경쟁이 치열해졌다. 최근 원서를 마감한 전국 20개 과학고 역시 2015학년도 입학 경쟁률이 3.7대1로 전년(2.94대1)보다 높았다. 서울 북부 지역의 중학교 교사인 천 모 씨는 "반 배치 고사에서 고1 과정을 출제하거나 선행학습을 요구해온 곳은 대부분 외고와 과학고 등인데 이들 학교는 교과운영의 재량권이 더 많다"며 "일반고 진학을 꺼리는 아이들이 더 늘어나는 등 첫 단추부터 잘못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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